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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사항/성명 및 활동

일본 교토 지역 활동가 교류 보고

by 말랑키즘 2022. 8. 22.

일본 교토 지역 활동가 교류 보고

 

 

 지난 819, 필자는 우리들의 상호부조’, 말랑키즘을 대표해 일본의 간사이 지역 대학 동지들을 만나고 왔다. 원래 교토 방문 계획은 7월 중에 마련되어 있었다. 하지만 마침 그 당시 한국에서는 거제도에서 대우조선 하청노동자들의 투쟁이 한창이었고, 그 때문에 예약해 두었던 항공권, 숙소 등을 전부 취소하고 새로 예약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거기에는 아무런 후회도 없다. 모든 선택은 결과와 더불어 기회비용을 낳는다. 노동자로서, 또 아나키스트로서 당시 내린 그 판단에는 아무런 미련이 남지 않는다. 다만 교토로 향하며 내내 마음에 걸렸던 것은 방학 기간이라 대학가가 한산해진 관계로 애당초 준비했던 프로그램을 그대로 진행할 수 없다는 것, 그래서 아나키즘에 대해 관심을 가지는 학생 대중을 만날 기회가 뒤로 밀렸다는 점이었다. 사람들이 많이 없으니 아나키즘을 처음 접하는 학생 동지들에게 아나키즘을 소개하고, 다음 방일 일정을 잡거나 혹은 온라인을 통해서라도 함께 아나키즘을 학습하자고 권유하고 일정을 잡는다는 계획을 이번에 실행에 옮기지 못했다는 점을 생각하면, 이번 교토행은 실패한 일정이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교토를 방문하니, 애초의 계획을 기회비용 삼아 다른 것들을 결과로 얻을 수 있었다.

 

 우선 첫 번째로 얻은 것은 반성이었다. 나름 여러모로 준비를 많이 했다고 생각했건만 막상 도착하니 부족했던 부분들이 머릿속을 하나둘 스쳐 지나갔다. 스스로는 프로그램의 주제를 운동, 혹은 활동을 거의 접해보지 못한 이들을 대상으로 하여 진행하려 하니 최대한 개괄적인 이야기, 쉬운 이야기를 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으나, 이번에 만난 동지 가운데 이제 막 활동을 시작하는 동지들도 그런 부분에 대한 고민들을 이미 지니고 있었다. 처음의 계획대로 프로그램을 진행했더라면 서로 아는 이야기만 하고, 좋은 이야기나 대충 나누고 끝났겠다 생각하니 아찔한 기분이었다. 덕분에 추후 재차 교토를 방문해 프로그램을 진행하게 되면 사람들과 어떤 주제로, 어떻게 이야기를 나누어야 할지에 대한 여러 힌트를 얻을 수 있었다.

 그다음 얻은 것은 사람이었다. 교토를 방문한다고 하니 기꺼이 시간을 비워준 교토대학, 리쓰메이칸대학 등의 여러 동지들은 마치 오래전부터 알고 지내던 이들처럼 편하게 필자를 맞아주었다. 특히 그 와중에도 의미 깊었던 것은 서로가 서로의 경험을 토대로 각자 안고 있던 활동의 고민들에 대해 의견을 나눌 수 있던 점이었다. 이번 교류회에서는 특히 한일뿐만 아니라 중국에서 유학을 온 동지도 만날 수 있었는데, 이런 대화 가운데서 또 새로운 방향으로의 운동을 고민할 수 있는 계기, 특히 중국공산당과 시진핑의 독재와 탄압 아래서도 어떻게 하면 더욱 많은 이들과 함께, 더욱 많은 방법으로 자유와 평등을 위한 투쟁을 해 나갈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을, 그저 뇌내망상으로 끝내는 것이 아니라 현실적인 수준에서 할 수 있어 특히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필자는 그간 명확한 목적의식이 없는 만남은 운동에 그다지 보탬이 되지 않는 것 아닌가 여겨왔다. 하지만 같은 목표를 바라보고 각자의 자리에서 묵묵히 그것을 위한 실천을 해 나가는 이들과의 만남은 서로가 서로의 존재를 인지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시너지를 내는 시간임을 부정할 수 없다. 특히 이런 교류는 서로 더욱 긴밀하게 연대할 수 있는 기반으로도 작용한다. 교토대학 동지 중 한 명은 이번 교토행이 가능하게 여러 수고를 마다하지 않았고, 말랑키즘이 연대하는 세종호텔 동지들의 투쟁을 다룬 영상의 일본어 자막 번역 역시 맡은 바 있다. 서로가 교류하고 있지 않았다면 이런 수고, 이런 연대는 사실 말은 쉬워도 데면데면하거나 어려운 것이었으리라는 점은 쉬이 예상할 수 있다.

 이번 교토행이 비록 애초의 목표를 완수하지는 못했으나, 다음번 더욱 철저한 준비를 할 수 있는 반성을 제공해주고 새로운 고민과 그로부터 시작되는 연대의 시발점을 마련해준 데서 소정의 성취감을 느낀다. 비록 코로나로 인해 아직 이동이 쉽지 않으나, 빠른 시일 안에 이전처럼 자유롭게 오갈 수 있는 날이 오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우리의 교류와 연대는 이때를 위한 것이고, 이미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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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상호부조’, 말랑키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