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해 복구 상호부조 활동 보고
중부 지방에 전례 없는 폭우가 내리고 난 지난 주말, “우리들의 상호부조”, 말랑키즘은 강남구 소재 판자촌 구룡마을과 관악구 반지하 주택가에서 진행된 수해 복구 활동에 참여했다. 토사에 유린당한 판잣집과 물이 들어찬 반지하 방의 모습은 참혹했다. 수해를 입은 분들이 조속히 일상을 되찾기를 기원하며, 이번 재난에 희생된 분들께도 애도의 마음을 표한다.
이번 사태를 겪고 정부는 이전에는 미처 몰랐다는 듯 부랴부랴 주거 취약 가구의 실태를 조사하고 있으며, 언론 역시 영화 “기생충”에서 묘사된 모습을 인용하며 연일 보도를 내놓고 있다. 그러나 그 복구 활동에 동참한 이들은 글과 영상으로는 미처 다 전해질 수 없는 절망감, 그리고 그 너머에 도사리고 있는 거대한 구조적 불평등을 온몸으로 느꼈을 것임이 틀림없다고 생각한다.
우리 사회를 지배하는 자본주의 체제는 경제 발전과 개발이라는 미명 아래 소외된 이들의 주거권을 빼앗아 그들을 산속 판자촌으로, 땅속 반지하 방으로 밀어 넣었다. 그리고 그 결과가 기후 재난이라는 부메랑으로 우리에게 되돌아왔을 때, 가장 가혹한 피해를 입은 것 역시 바로 그들이었다.
불평등의 그림자는 흙 속에 파묻힌 구룡마을을 맞은편에서 내려다보며 쉼 없이 올라가는 아파트 단지의 그늘에, 컴컴한 방 안에 자욱한 썩은 음식물과 곰팡이의 악취 가운데, 그리고 침수되고 오염된 채 길가로 끄집어내지는 누군가의 무거운 이부자리 속에 있었다. 지난주 우리를 덮친 재앙의 실체는 폭우가 아닌 사회적 모순이었다.
그리고 제아무리 커다란 배수관을 매립하고 반지하 주택을 법으로 금지하겠다 하더라도, 국가는 오늘날의 문제들을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본질적으로 억압적 체제 그 자체인 국가는, 이 불평등 자체에 뿌리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이번 재난에서 우리는 대통령과 국회의원들이 우리에게 어떤 도움도 되지 못한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국민을 대표한다는 그들이 현장에 방문해서 내뱉는 것은 망언이요, 현장 밖에서 행하는 것은 정쟁뿐이었다. 망치를 든 자 눈에는 못만 보이는 것과 같이, 대의민주주의 안에서 모든 사건은 그들 눈에 지지율 등락과 연결되는 것들에 지나지 않은 것이다.
오히려 수해로 신음하는 이들에게 직접적인 도움이 된 것은 대중의 노력과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상호부조의 정신이었다. 폭우가 몰아치던 날, 사람들이 집 안에 갇히고 차 위에 고립되었을 때, 사람들은 국가 서비스에 기대지 않고 스스로 그들을 구해냈다.
또한 우리는 재해가 지나간 뒤 무수한 사람들이 이웃을 돕고자 고된 일도 마다하지 않고 나서는 모습 역시 볼 수 있었다.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오물을 헤치고 들어가는 구청 직원들의 눈빛에도, 관료주의적인 공무원이 아니라 대중의 일원으로서 그들과 함께하는 진실한 마음이 있었다. 그리고 그 모든 상황에서 대중은 누군가의 지휘를 기다리지 않고 스스로 판단하고 의논하며 행동했다.
이처럼 상호부조는 우리를 파편화시키고 소외시키는 자본주의와 관료주의 안에서도 사회를 지탱하며 사람들을 연대의 정신으로 묶어낸다. 그리고 가장 어려운 순간에 우리가 의지할 수 있고, 의지해야 할 것은, 국가도 체제도 아닌 우리 스스로의 힘인 것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대중을 긍정하며, 대중 안에서 희망을 본다. 그리고 대중이 국가와 관료주의의 굴레를 벗어던진 뒤 크고 작은 조직으로 스스로를 구성할 때, 가장 창의롭고 거대한 역량을 발휘할 수 있음을 우리는 확언한다.
따라서 우리는 우리 자신을 점차 변두리로 밀어내어 가며 불평등을 양분 삼아 자라나는 자본주의와 그 탐욕을 고발한다. 그리고 우리는 이 구조적 모순에 박차를 가하며 스스로를 존속하는 국가라는 체제를 규탄한다. 그 대신 우리는 직접 행동과 연대의 힘으로, 대중 속에서 대중과 함께 발맞추어 나갈 것이다.
동시에 우리는 대중의 능력과 상호부조의 힘이라면 오늘날의 재앙을 미리 막아낼 수 있었음을 깨닫고, 이러한 행동을 소홀히 했음을 반성한다. 우리는 보다 관심을 기울이고 우리 주변의 사람들을 설득해야 했다. 그렇다면 우리 사회는 현재와 조금이라도 다른 모습이 될 수 있었을 것이며, 우리와 이웃을 삼킨 홍수의 피해 역시 조금이라도 경감할 수 있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앞으로 더욱 많은 이들과 함께 상호부조의 정신을 실천할 것이며, 더욱 부단히 국가와 자본주의의 모순을 고발할 것이다. 대중이 자신의 힘을 자각하고 스스로 일어설 때, 우리는 우리에게 닥칠 다음 재난을 보다 힘 있게 이겨낼 수 있을 것이다.
2022년 8월 16일
‘우리들의 상호부조’, 말랑키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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