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우조선 하청노동자 투쟁 연대, 네 번째 연대를 마치고
1. 우리들의 진수식
7월 23일 토요일, 거제로 모인다는 희망버스와 함께하기 위해 ‘우리들의 상호부조’, 말랑키즘은 다시 거제로 향했다. 민주노총 전국금속노소 거제·통영·고성 조선하청지회의 파업을 응원하기 위한 희망버스. 2011년 부산 한진중공업 복직투쟁 당시 35m 상공의 크레인에서 고공농성을 하던 김진숙(현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을 살리기 위한 희망버스와 같은 버스.
그동안 말랑키즘은 대우조선 하청노동자들의 파업에 연대하기 위해 세 차례(6/25, 7/2, 7/8) 거제로 향했었다. 파업 상황을 예의주시하며 23일 거제행을 준비하고 있던 중, 22일 오후께 하청 노사 간의 협상이 타결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협상 결과는 일견 실망스럽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었다. 임금 4.5% 인상, 내년부터 상여금 140만 원 지급, 폐업한 하청업체 노동자들의 고용 승계 노력의 내용이 담긴 합의안. 최초 하청지회의 요구 사안이었던 임금 30% ‘인상’(‘회복’이라고 읽자)은 철회해야 했고, 파업 피해에 대한 민·형사상 면책 요구는 추후 협상 과제로 남았다. 그리고 이 잠정합의안에 대해 하청지회 조합원 118명 중 109명이 동의하며 가결되었다.
이렇게 6월 2일부터 시작된 거통고 하청지회의 파업 투쟁은 51일째 되는 날 미진한 조건으로 협상이 타결되며 종료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내 실망도 잠시, 다행이라는 생각이 곧바로 들었다. 6월 22일부터 끝장투쟁을 외치며 1도크 바닥에 철제감옥을 만들어 스스로 들어간 유최안 부지회장, 도크 30m 난간에서 고공농성을 하는 여섯 명의 노동자들, 여의도 산업은행 앞에서 단식농성을 하는 세 명의 노동자들, 그리고 그들을 지켜보며 몸과 마음이 고달팠을 다른 조합원들, 이 사람들을 생각하니 이 결정이 맞다고 느껴졌다. 우리는 90% 이상의 조합원들이 미진한 조건임에도 동의하기를 선택한 마음을 헤아려 볼 필요가 있다. 파업 투쟁을 하는 이유는 죽기 위해서가 아니다. 살기 위해서다. 사람답게 살기 위해서. 노동에 대한 정당한 대가를 받으며 생계 걱정 없이 차별 없이 주변의 소중한 사람들과 자유롭고 행복한 일상을 누리기 위해서.
싸움은 끝나지 않을 것이다. 2015년부터 대우조선은 조선업 불황을 이유로 노동자들을 해고했고 임금을 삭감했다. 15년차 노동자 기준 2014년 평균 연봉은 4,974만 원에서 2021년 3,429만 원으로 줄었다. 물가는 올랐는데. 약 2만 명의 대우조선 노동자 중 원청 정규직은 약 8,500명, 하청 노동자는 약 1만 1,500명이다. 하청에서도 사정은 갈린다. 하청에 하청에 하청이 있고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있다. 20~30년차 숙련공의 시급은 1만 원 안팎이다. 이러면 한달 실수령액이 200만 원 안팎이 된다. 이것도 1차 하청업체 정규직이 기준이다. (22년차 용접사인 유최안 부지회장의 경우 시급 1만 350원을 받았다고 한다.) 한마디로 저임금 중노동이다. 산재로 사망하는 비율이 전체 업종의 평균과 비교했을 때 조선업이 2,73배가 높다. 2016년부터 2021년 10월까지 88명이 현장에서 사망했는데 이 중 77%가 하청노동자였다고 한다.
이런 조건의 일자리 앞에서 ‘이대로 살 수 있다’고 쉽게 말할 수 있겠는가? 20년 30년 젊음과 애정을 바쳐가며 일하고 갈고 닦은 기술을 가지고 있으면서 이런 대접을 받는 것이 정당한가? 시장의 변화에 유연하게 반응하면서 다른 일자리를 찾아보려는 노력을 왜 하지 않느냐고 쉽게 말할 수 있는가?
정말 ‘이대로 살 순 없’는 것이다. 대우조선 하청노동자들의 외침은 그래서 정당하다. 애당초 이런 조건의 일자리가 존재한다는 것 자체가 문제다. 조선업이 다시 호황으로 돌아서 인력이 부족하면 임금을 늘리는 등 좋은 조건을 만들어 놓아야 할 것이 아닌가. 끊임없는 자본의 증식을 위해 착취의 구조를 마련하고 존속시키려는 회사가 부당한 것이다.
23일 거제 대우조선해양 서문 앞에서 민주노총 금속노조 결의대회와 희망버스 집회가 연달아 열렸다. 수많은 발언과 공연들 사이에서 지속적으로 들었던 말은 ‘이게 끝이 아니고 시작’이라는 것이었다. 희망버스를 타고 온 사람들은 이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님을 알기 때문에 오히려 다음을 응원하는 마음으로 온 것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김형수 지회장은 자신들의 싸움이 분명히 ‘승리’라고 ‘과소평가’하지 말라고 말했다. 사실 그렇다. 노조의 활동을 인정받고 조선업 노동자의 상황을 다시 전국적으로 알린 것은 분명한 성과다. 51일 동안의 거통고 하청지회의 치열한 투쟁이 이것을 가능하게 했다.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는 유최안 부지회장의 음성은 전화기 너머로 들을 수 있었는데, 그는 ‘다시 싸운다’고 말했다.
김진숙이 있었다. 1981년 용접공으로 대한조선공사(한진중공업의 전신, 현 HJ중공업)에 입사한 그는 노동조합 활동을 하다 해고당했다. 2011년 한진중공업의 정리해고 때는 이를 반대하며 309일간 크레인 위에서 고공농성을 벌였다. 올해 2월에는 37년 만에 회사에 복직할 수 있었던 그의 복직을 기념하기 위한 집회가 있었다. 거기에서 그는 하늘색 작업복을 입은 채 “탄압과 분열의 상징인 한진중공업 작업복은 제가 입고 가겠습니다. 여러분은 미래로 가십쇼.”라고 말했다. 그런 그가 불과 몇 달 만에 이 자리에 와야 했다. 그는 무슨 생각이 들었을까. 몇십 년이 지나도 제자리걸음인 조선소 노동자들의 환경을 보며 어떤 마음이었을까. 그는 분명하게 말했다. “수십 년 동안 하청노동자를 착취했던 대우조선해양이 불법이고, 툭하면 밀리는 임금 체불이 불법”이라고.
거통고 조선하청지회의 투쟁 상황이 전국적으로 알려지게 되면서 정부에서도 입장을 내놓지 않을 수 없었다. 역시나 ‘법과 원칙’을 들먹여 가면서 하청노동자들의 점거 자체만을 문제 삼고 ‘불법’이라고 규정했다. 조선업 전반과 대우조선해양의 착취의 구조가 지금까지 존재해왔던 맥락은 도외시한 채.
그들이 말하는 자유는 아주 좁다. 생산수단을 가진 채 시장의 상황에 따라 마음대로 결정할 수 있는 일부 자본가 기업가의 자유에 불과하다. 조선소 하청노동자들에게 자유가 있는가? 이들은 노오력이 부족해서 앞서 말한 거지 같은 조건의 일자리를 감내해야 하는가? 생산수단의 전(全) 역사를 따져볼까? 자본가들은 정말 자기들의 100% 순수한 노오력으로 좋은 조건을 누리면서 살아가는가? 정말 자유를 말하고 싶은 거라면, 정말 ‘자유지상주의자’라면 착취의 구조 자체를 없애고 말하라. 의사결정에 현장 노동자의 동의를 구하고 나서 말하라. 자유는 보편적이어야 한다. ‘나’가 자유로운 만큼 ‘너’도 자유로울 수 있어야 진정한 자유라고 말할 수 있다. 자유와 평등은 본래 한 몸이다.
장기적으로도 싸움은 계속될 것이지만, 우선 눈앞에 놓인 것이 무엇인지 볼 필요가 있다. 이번 거통고 하청지회의 파업투쟁의 결과 하청노사 간에 잠정합의안이 타결되었지만, 파업에 따른 회사측의 민·형사상 면책 여부가 남아있다. 51일간의 파업과 점거 농성에 대해 정부는 불법행위라고 규정하여 타결 전까지 공권력 투입을 강하게 고려하고 있었고 현재는 형사처벌의 대상으로 여기고 있다. 민사상의 문제는 노사간의 문제이기 때문에 관여하지 않을 것이란다.(산업은행은 국책은행이고 대우조선해양 지분의 55.7%를 소유하고 있다.) 사측은 그동안 약 8,000억의 손해를 입었다고 주장하며 이에 관한 손해배상소송을 빌미로 사실상 협박을 가하고 있다. 추후 협상에서 면책 여부가 어떻게 결정될지는 모르지만 어쩌면 다시 거제로 달려가야 할 일이 생길지도 모른다. 하청노동자들을 위해 깨어있자. 깨어있자.
대우조선해양은 파업 종료 다음 날 도크에 물을 채우고 진수식을 했다고 한다. 희망버스 집회에서는 행사의 마지막 순서로 2m 높이의 ‘희망배’를 띄웠다. 그 안에 사람들이 접은 종이배와 풍선을 채워 넣었다. 이쪽이 미래로 나아가는 진짜 진수식이다.
2. 최후에는 누가 웃고 있는지 보자
7월 24일 토요일인 그제, '우리들의 상호부조', 말랑키즘과 서울대학교 아나키즘 소모임 '검은 학'은 다시 한번 거제도로 내려갔다. 이번이 네 번째인데, 아마도 한동안은 다시 내려갈 일이 없을 것 같다. 거제통영고성 조선하청지회 동지들이 51일에 걸친 투쟁 끝에 대우조선과의 협상 타결을 얻어냈기 때문이다.
물론 몇몇 단위에서 이야기 나온 것처럼, 말랑키즘 내부에서도 이번 협상안을 통해 얻어낸 성과가 아쉽다는 의견이 있었다. 8년 가까이 참다가 한 달 넘게 목숨을 내걸고 이어나간 싸움의 결과가 “겨우” 임금 4.5% 인상. 그마저도 손해배상 소송에 관한 사안은 추후 개별협상. 이런 협상안을 제시한 대우조선은 그렇다고 치자. 하지만 하청지회 측이 여기서 싸움을 그치다니, 언뜻 이 성과를 축하하기에는 쉽사리 불편한 마음을 떨쳐낼 수 없었다는 주장이었다. 필자 역시 “끝까지 싸워서 승리하겠다”라고 외쳐 왔는데, 정말 “이게” 끝인가 의심하는 입장이었다.
심지어 23일 토요일이 되기 직전 대우조선소에 경찰이 대규모로 투입되고 여러 정부 고위 인사가 방문한 상황이었다. 그간 쌓이기만 해온 긴장감이 최고조에 다다라 주말 희망버스가 도착하기 전에 무슨 일이 터지지 않을까도 싶었다. 하지만 마주한 상황은, 커질 대로 커질 풍선이 매듭도 짓지 못한 채 바람만 빠진 것 같았다.
하지만 이런 의견은 하청지회 동지들에게 무엇을 원하는 것일까? 동지들이 경찰과 파괴적인 격전을 벌이고, 그렇게 피를 흘리며 절뚝거리고 돌아오는 동지들을 달래며 “독선적인” 분노라도 느끼고 싶은 것일까? 뱃가죽이 등골에 달라붙기까지 파업을 이어 나가는 동지들의 고통 속에서 “낭만적인” 비참함을 발견하고, 당사자가 아닌 입장에서나 느낄 수 있는 “예술적인” 희열을 느끼고 싶은 것일까? 그렇다면 그것은 “끝까지의 싸움”을 “승리까지의 싸움”이 아니라 “우리 모두 흔적 없이 부서질 때까지”의 싸움으로 착각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확실하게 짚고 넘어가야 한다. 이것은 승리다. 4.5%라는 수치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거통고 동지들이 51일간 국가권력과 자본에 맞선 끝에 조합원들의 동의로 이번에는 이만큼의 선에서 다음번 더 큰 승리를 준비하기 위해 쟁취해낸 승리다.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의 대립을 넘어, 금속노조를 비롯한 민주노총의 응원과 연대를 받으며 얻어낸 승리이다. 이 투쟁은 국가와 자본에 맞서 우리의 힘을 여실히 드러냈으며, 2022년 전국 비정규직 투쟁에서 결코 가벼이 여길 수 없는 전선이었고, 직접행동의 위력을 목도하게 한 훌륭한 투쟁이었다.
그런 지지와 힘을 등에 업고도 겨우 이 정도 성과에서 그칠 만큼의 각오밖에 없냐고? 자기 일이 아니면 쉽게 말할 수 있다. 생각해보자. 우선 한 달 반 동안 월급을 받지 못하는 채 투쟁해야 했다. 임금을 받을 수 없다는 사실 하나로도 벅찬데 하청노동자라는 이유로 휘몰아치는 차별의 압박도 버텨야만 했다. 힘들게 농성하고 있다면서 그럼 이 사진에는 왜 웃는 모습이 찍혔냐며 트집을 잡는, 자칭 기자라는 유인원이 기사랍시고 똥을 던져댔다. 경찰은 노동조합 간부들에 대해 체포영장을 받으려 했다. 이렇게 몸과 마음을 모두 갈아 넣은 채 0.3평 감옥에서 30여일을 버틴 채 밖으로 나와 겨우 허리를 편 유최안 동지에게 각오가 부족했다고, 투지가 부족했다고 감히 말할 수 있겠는가? 4.5%로 되겠느냐고, 다시 그 교도소 독방보다도 한참 작은 감옥으로 돌아가야 하지 않겠느냐고 할 것이냐는 말이다.
어차피 이 모든 사태의 원흉이 누구인지를, 전적으로 비난 받아야 하는 것이 대우조선과 대우조선을 자회사로 두고 있는 산업은행이라는 거대자본이라는 것을 우리 모두 다 잘 알고 있지 않은가? 투쟁의 성과가 아쉽다면, 그럼에도 4.5보다 큰 수는 상상도 못 하는 대우조선과 산업은행에 비난의 화살을 돌려야 마땅하다. 아니, 그렇게 목숨을 건 투쟁을 하는데도 그것을 제대로 사수하지 못한, 더 많은 연대를, 더 많은 조직을 만들어내지 못한 우리에게 차라리 비난의 화살을 돌려야 마땅하다고 하는 것이 낫겠다. 그런데 뼈저리게 반성하고 각오를 다져야 하는 우리가 현장에서 온 힘을 다해 투쟁한 동지들에게 쉽게 아쉬움을 운운하는 것이 말이 되는가? 물론 모든 투쟁에는 아쉬운 지점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이 쌓여 계속해 중단 없는 승리를 만드는 것이고, 그 과정을 우리 아나키스트들은 "사회혁명"이라고 부른다. 아쉬운 지점, 제대로 평가하고 이후 투쟁에서는 반복되지 않게 하기 위해 반성해야 한다. 하지만 그것은 일차적으로는 투쟁 당사자 내부에서 지적되어야 하는 것이고, 연대 단위들과 투쟁을 평가하며 조심스럽게 제안되어야 하는 것이다. 사석에서 술자리 푸념으로 말하는 것이야 누가 어찌 막겠느냐마는 그것이 아니라면 이토록 신중해야 하는 것이다.
앞서도 이야기했지만 아직 거통고 조선하청지회 동지들의 투쟁은 끝나지 않았다. 8천억 손배소, 8천억 손배소 노래를 불러대는 대우조선, 산업은행과의 싸움이 남았고, 아직 제대로 돌려받지 못한 빼앗긴 임금을 되찾을 싸움이 남았고, 노동조합 조합원 수를 더욱 배가해야 하는 싸움이 남았다. 이번 승리가 아쉽다면, 그 아쉬움을 넘어 다음 번 싸움에서는 더욱 많은 승리를 거머쥘 수 있는 연대를 만들자. 그 연대를 확고히 하기 위해 더 많은 이들을 설득하고 함께 하자. 그리하여, 결국 최후에는 누가 웃고 있는지 보자.
2022년 7월 25일
‘우리들의 상호부조’, 말랑키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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