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가장 지대한 영향을 끼친 사건을 한 가지 꼽으라면 역시 제2차 세계대전을 꼽을 수 있을 것입니다. 지금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한국 땅 역시 참혹했던 그 세계대전의 틈바구니에서 각축의 결과, 지금의 모습을 띠게 되었으니, 그 영향은 무시할 수 있는 수준의 것이 아닐 것입니다.
그 제2차 세계대전을 만든 것은 두말할 것 없이 그 이전의 사건들입니다. 물론 세계 각지의 모든 상황이 뒤엉켜 거대한 흐름을 만들어냈습니다만, 그럼에도 그 흐름을 주도하던 이른바 제국주의 세력들의 영향력을 우리는 간과할 수 없습니다. 이 제국주의는 또 산업혁명이라는 생산력 증가를 바탕으로 한 자본주의와 뗄 수 없는 관계를 맺고 있고, 이 자본주의가 결국 노동으로부터의 소외를 만들어내 절대다수의 노동자를 비참하게 만든 데에서부터 사회주의는 시작합니다. 이 사회주의를 실천하기 위한 방법, 각 정파의 사회주의자들이 바라던 그림은 물론 다소간, 혹은 커다란 차이가 있었고, 볼린의 저작 『알려지지 않은 혁명』은 그 가운데 아나키즘과 볼셰비즘, 두 흐름을 따라 사회주의를 향한 열망의 가장 뜨거웠던 분출인 러시아혁명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우리들의 상호부조’, 말랑키즘은 아나키스트 단체입니다. 그 때문에, 아나키즘이 지난 수 세기 동안 제1차, 제2차 세계대전, 그 가운데 한 축을 담당했던 소비에트 연방에 미친 영향이 작금의 한국에서는 전혀 어떤 의미였는지 알려지지 않은 데에 대해, 그로부터 교훈을 얻을 수 없는 데에 아쉬움이 컸고, 그것이 『알려지지 않은 혁명』을 다른 여러 문서 가운데서도 가장 먼저 번역하고 출판해야겠다고 마음먹은 이유였습니다. 아나키즘이 지난 역사에 남긴 흔적은 비단 러시아혁명 외에도 여러분이 익히 알고 계시는 조지 오웰(George Orwell)의 『카탈루냐 찬가』, 혹은 헤밍웨이(Ernest Miller Hemingway)의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의 배경이 된 스페인 내전에서도 찾아볼 수 있고, 이는 현재 한국에서는 절판된 한스 마그누스 엔첸스베르거(Hans Magnus Enzensberger, 『수학 귀신The Number Devil』의 작가 엔첸스베르거가 맞습니다)의 『어느 무정부주의자의 죽음』(재번역 신간 출간 예정)에서 더 상세히 만나볼 수도 있는데, 이 역시 제2차 세계대전의 향방에 끼친 영향이 지대하기에 결코 가벼이 넘기기에는 아쉬운 일입니다.
앞서 이야기한 것과 같이 이 사건들은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를 만들어낸 흐름들이기에 중요합니다. 심지어 이는 최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또다시 그 연관성을 드러냈는데, 제3권에서 다루는 마흐노주의의 실패가 지금의 어지러운 정세를 만드는 데 충분히 일조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현재를 살아가지만, 그것은 과거로부터 이어지고, 이는 미래의 사건으로 또다시 이어지기에 현재를 어떻게 꾸려야 하는지에 대한 책임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열심히 하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미래의 자유와 평등을 생각한다면 결코 거기서 멈출 수는 없습니다. 역사로부터 잘못된 지점을 배우고, 그것을 수정 보완해 지금을 잘 펼쳐내는 일, 이것이 우리 앞에 놓인 의무일 것입니다.
볼린은 바로 이런 지점에서 더욱 살펴볼 가치가 있는 작가였습니다. 아나키스트로 생을 마감한 볼린은 러시아혁명을 온몸으로 관통하는 가운데 여러 아나키즘 분파들이 서로 난립하는 것을 보아 왔습니다. 볼린의 또 다른 글 「통합에 관하여」는 바로 그 관점에서 어느 한 분파의 독단이 아니라, 모든 정파로부터 좋은 것들을 추려 계속해 쇄신할 때 비로소 지금을 ‘잘’ 조직할 수 있으리라 이야기합니다. 사회주의는 늘 현재의 문제를 과거와 현재의 대립항 가운데서 새 길을 찾는 정반합의 변증법을 따라 나아갑니다. 볼린이 주장한 통합적 아나키즘은 영어로 Synthesis Anarchism이라 적는데, 이 Synthesis란 다름 아닌 변증법의 ‘합명제’를 뜻합니다. 그에게 있어 통합적 작업이란 단순히 모순된 것들을 한 데 모아 버무리는 것이 아니라, 아나키즘의 새로운 진화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그가 갈무리한 러시아혁명의 큰 서사 역시 오롯이 그의 관점으로만 바라보는 데서 그치는 것이 아닌,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밝혀진 여러 사실과 관계들의 그물망을 더해 바라보아야 할 것입니다. 아마도 그것이 볼린의 저작을 가장 올바르게 읽는 방법이자 볼린이 보고자 했던 새 흐름일 것입니다. ‘우리들의 상호부조’, 말랑키즘은 이 흐름을 계속해서 이어 나가는 작업, 새롭게 연결하는 작업, 그리고 ‘잘’ 투쟁해 아나키즘이 이야기하는 모두가 자유롭고 모두가 평등한 세상을 열어젖히기 위해 묵묵히 걸어 나가겠습니다. 앞으로 더 많은 아나키즘 도서, 더 많은 오프라인 학습, 더 많은 투쟁 현장에서 여러분과 함께 이 길을 걸어 나갈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2022년 6월 5일
‘우리들의 상호부조’, 말랑키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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