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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사항/성명 및 활동

“국가 공인 혁명”―2022년 광주 방문에 대하여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22. 5. 16.

국가 공인 혁명

2022년 광주 방문에 대하여

 

 

 광주에 있는 신 묘역(국립 5.18 민주묘지)을 방문한 사람은 알 것이다: 장소가 드러낼 수 있는 위엄과 웅장함을. 신묘역의 주차장에 진입하기만 하면, 저 멀리서부터 임을 위한 행진곡이 들린다. 한국 양식으로 지어진 민주의 문이라는 팻말이 걸린 거대한 입구 너머에 있는 묘지는 그 규모 자체로, 방문자로 하여금 정숙을 요구한다. 묘지 한 가운데에는 큰 석제 관문이 있고, 그 뒤에는 하늘을 향해 솟구친 두 개의 심지어 더 높은 기둥이 비늘로 뒤덮인 거대한 석제 알을 지탱하고 있다. 가까이 갈 수록 알을 품은 기둥은 커지고 석제 관문은 상대적으로 작아지게 하는 착시는 방문자의 마음을 뒤흔들어 놓는다.

 

 '우리들의 상호부조', 말랑키즘은 서울대학교 아나키즘 소모임 '검은 학'과 함께 광주 5.18 봉기를 기념하기 위해 지난 514일과 15일에 광주를 방문했고, 따라서 신 묘역도 방문하기로 했다. 그곳에서 우리도 제단 앞에서 안내인의 지시에 따라 향을 올리고, 고개를 숙이고, 묵념을 해 5.18 당시 희생 당한 열사들을 추모했다. 하지만 우리는 신 묘역에 안치된 열사들 추모했지, 우리는 그곳에서 우리 단체의 이름을 밝히지도, 깃발을 띄우지도, “쓰라린 아픔 끝에 쟁취해낸 우리들 조국의 자랑스러운 민주화를 기념하지도 않았다. 우리는 5.18 “민주화운동을 기념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5.18 “광주봉기를 기념하기 위해 광주를 방문했기 때문이다.

 

 신 묘역에서 나온 우리는 바로 옆에 있는, 다소 잊힌 구 묘역(망월공원묘지)을 방문했다. 누군가는 1980년 당시의 시신 매립지 모습을 의도적으로 보전하기 위해 구묘역은 그 모습을 하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대한민국은 우리에게 5.18을 잊지 말라고 으리으리한 신 묘역을 지었지만, 구 묘역과 비교하면, 국가가 우리가 기억했으면 하는 5.18은 매우 특정한, “공인된일부일 뿐이라는 것을 너무 쉽게 알 수 있었다. 구 묘역에는 신 묘역의 웅장함이 없다. 구 묘역에는 거대한 기념 조형물이 없다. 구 묘역에는 분위기를 깔아주는노래를 상시 틀어놓지 않는다. 구 묘역은 올바른 참배를 하는 순서가 없다. 구 묘역의 잔디 잎은 굵고 날카롭다. 구 묘역의 무덤은 서로 다닥다닥 붙어있다. 구 묘역에는 신 묘역에는 없는 것이 많다. 다만 신 묘역보다 구 묘역에 많은 것이 하나 있다: 오늘 국가가 인정하는 틀 안에서 활동하는 것을 거부하셨기에 국가가 친히 배제해 여기 안치되어 계신 분들의 수다.

 

 구 묘역을 방문하기 전에 우리는 다른 여러 곳을 먼저 둘러보고 왔다. 먼저 옛 들불야학이 있던 광천동 성당을 방문했다. 한 수녀님은 차에서 우르르 내리는 우리가 5.18을 기념하기 위해 온 외지인이라는 것을 한눈에 알아보셨다. 다가오신 수녀님은 현관이 있었던 벽만 남은 옛 야학 건물에 대한 친절한 설명을 해주셨다. 하지만 수녀님의 친절은 거기서 그치지 않고, 헐린 건물 옆에 놓인 아이스박스에서 방문객을 위해 준비된 얼음물과 과자를 가져가라고까지 말씀하셨다.

 

 그 다음으로는 민주광장과 바로 앞에 있는 전일빌딩에 갔다. 전일빌딩에서는 전두환 정권에 남동생을 잃고 5.18에 참여하신 당사자의 안내를 받았다. 우리는 동행한 동지가 미리 준비한 설명을 들으면서 전일빌딩을 둘러볼 생각이었지, 안내원 선생님이 우리에게 먼저 다가오실 줄은 몰랐다.

 

 마지막으로 묘원을 방문하기 전에 상무대를 방문했다. 그곳에서도 들불야학 터와 전일빌딩에서처럼 광주민의 5.18봉기의 기억을 듣는 모두에게 전하고픈 마음을 느꼈다. 옛 상무대에 세워진 공원 입구에는 42년 전 그곳에서 온갖 고문을 받으신 생존자분들이 방문객을 맞이하고 계셨다. 군의 폭력을 살아남은 그분들은 그곳에서 직접 군복을 입고 그때의 상처를 직면하면서 입구 바닥에 박힌 전두환의 이름이 새겨진 비석에서 영창까지 방문객에게 자세한 설명을 하고 계셨다.

 

 우리는 이틀 내내 광주를 둘러보며 느꼈고, 이튿날 숙소에서 광주 여행에 참여한 모두와 함께 진행한 세미나를 통해 확인했다: 광주 봉기는 1980년에 끝난 사건이 아니다. 5.18광주 봉기를 품은 분들의 숨결을 이렇게 아직도 우리 중에서 분다. 더는 그 숨을 내쉬지 못하는 분들과 아직까지도 그 숨을 내쉬는 분들을 국가는 절대로 전부 공인하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대한민국이라는 국가는 신 묘역의 과장된 으리으리함과 같은 전략을 통해 끝없이 자기 존재를 자기 정당화한다. 하지만 5.18 대중이 맞서 싸운 것은 바로 이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였다. 주먹밥을 나눠 먹은 것은 대중이었고 무기를 든 것도 대중이었다. 바로 이 대중이 오늘 우리가 헤아리기 힘든 고통과 타협하지 않고 국가의 폭력과 맞서 싸웠다. 전두환의 숙박 기념 비석을 뜯어 구묘역 입구에 박아 둔 것도 마찬가지로 대중이었다.

 

 '우리들의 상호부조', 말랑키즘은 5.18에서 대한민국의 민주화를 보지 않는다. 우리는 그 대신 해방 광주에서 영업을 재개한 상점들이 실천한 필요에 따른 분배와, 병원에 부족하던 피를 기부한 모든 이들이 실천한 상호부조와, 민주광장에서 열린 집회에서 지도자 없이 실천된 자체적 의사결정과, 전투를 이어 나가기 위해 자유롭게 연대해 결성한 아군이 실천한 자발적 조직을 기억한다.

 

 우리는 광주 '민주화운동'이 아닌, 광주 '봉기', 아니! 광주 '혁명'을 기억한다. 그날 희생된 이들을 기억하며 전두환의 이름이 새겨진 비석을 신 묘역이 아닌 구 묘역에서 밟는다.

 

 

2022516

우리들의 상호부조’, 말랑키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