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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사항/성명 및 활동

마녀사냥의 굿판을 걷어치워라―고 양회동 열사의 유지를 따라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23. 5. 21.

마녀사냥의 굿판을 걷어치워라

고 양회동 열사의 유지를 따라

 

 

   이 글을 읽는 여러분도 마녀사냥이라는 단어를 한 번쯤 들어봤을 것이다. 그것은 처음에 작은 목소리의 숙덕거림으로 시작한다. 숙덕거리던 이들은 일정한 목소리가 모이면 공개적으로 목소리를 내기 시작하며 그 대상을 손가락질하고 사회적으로 매장해 나간다. 목소리와 손가락이 가리키는 끝에 선 누군가가 악마와 계약을 맺었다고, 음침한 동굴에서 아이들의 피를 마신다고 몰아가면서. 이와 더불어 여론이 형성되면 정의를 구현하겠다는 이들이 나타나 더욱 본격적인 행동을 취한다. 죄 없는 사람을 잡아다 심문하고 고문한 뒤, 마침내는 말도 안 되는 죄목을 달아 화형에 처한다.

   지금 한국 땅 곳곳에 노동 탄압이라는 이름의 마녀사냥이 자행되고 있다. 그리고 그 결과, 지난 52일 건설노조의 고 양회동 열사가 희생되어야만 했다. 국가와 자본의 한층 더 거세진 폭압의 고통, 그것에 맞선 정당한 투쟁이 한낱 조직폭력이라는 비방, “노동조합이라는 음침한 동굴에서 단체협약이라는 주술로 경제강국을 위해 불철주야 노력하는 선량한 기업가들이 맥을 못 추게 해 자유와 공정의 피를 빨아먹는다는 손가락질이 윤석열 취임 이후 끊임없이 자행되었다. 이 계획적 살인 시나리오에 짓눌려 끝내 세상을 떠난 열사를 애도한다.

 

   열사 생전에 건설노조 탄압 저지 투쟁에 온 힘을 다하지 못한 만큼, ‘우리들의 상호부조’, 말랑키즘은 소속 단체인 서울대학교 아나키즘 소모임 검은 학과 서강대학교 아나키즘 소모임 검은 알바트로스와 함께 지난 512일 금요일과 19일 토요일, 고 양회동 동지를 추모하는 일정을 기획했다. 이 비통함은 비단 우리에게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리라는 확신이 있었고, 대학 사회에 같은 뜻을 지닌 모든 이가 함께 해줄 것을 호소했다. 금요일에는 양 대학 학생이 혜화역에 함께 모여 양회동 열사의 예식장이 있는 서울대학교병원까지 침묵 행진을 진행, 조문을 마친 뒤 추모문화제까지 함께 했다. 이후 토요일에는 전국건설노동조합 경기중서부건설지부, 관광레저산업노동조합 세종호텔지부, 공공운수노조 대학원생노동조합지부 활동가들을 서울대학교로 초청해 지금 윤석열 정권이 벌이고 있는 살인과 사기 행태를 여러 대학 사회에 알리기 위한 간담회, ‘그러나 우리는 살인과 사기에 지지 않지윤석열 정권 노조탄압 여론몰이 바로보기를 준비해 진행했다.

   428일 세종호텔지부 해고 철회 투쟁 500일 맞이 12일 투쟁 연대, 430일 이주노조 메이데이 행사 및 4.30 메이데이 전야제, 51일 메이데이 집회, 거기에 더해 513~14일에 걸친 광주 봉기 순례로 이미 가득 차 있던 5월 일정에 더욱 박차를 가해야만 했다. 단 일주일 사이 일정 안내 포스터를 준비하고 대자보와 홍보물을 제작 · 인쇄해 부산하게 서울대, 서강대 곳곳에 부착했다. 급히 일정을 진행하느라 서로 맞지 않는 시간을 조율해가며, 간담회 장소를 대관, 행사 일정 등을 조율해 나갔다. 특히 검은 학과 검은 알바트로스 동지들은 429일부터 519일까지 매주 주말을 여러 스케줄과 병행하며 이 일정을 수행했다. 한 행사를 진행하는 동시에 그다음 행사 준비도 함께 해야 하는, 숨 쉴 틈 없는 2주였다.

   당연히 우리는 서툴렀다. 공동 조문까지 일주일밖에 남지 않은 상황에 조문단을 더 다양한 방법으로 가능한 많은 사람에게 알려야 했다. 혜화역부터 진행된 침묵 행진에서는 보다 더 많은 사람이 우리 뜻을 볼 수 있게끔 더 긴 동선을 선정하지 못한 아쉬움이 있었다. 간담회에서 더 많은 현장의 목소리를 듣지 못한 아쉬움이 남았고, 진행 역시 보다 능숙하지 못한 점은 부끄러웠다. 하지만, 그럼에도 강행해야 하는 일정이었다. 이렇게 강행하지 않으면 이 사안을 조금이라도 더 가깝게 알고 싶어 하는 여러 사람들에게 더 많은 정보와 의견을 제공할 수 없었기 때문이라는, 아무도 하라고 강요한 적 없으나 우리 마음에 무겁게 내려앉은 투쟁의 의무가 있었기 때문이다. 무엇이 건설노조 조합원을 괴롭히고 양회동 열사를 죽음에 이르기까지 몰아댔는지 알려야만 했기에, 더욱 그러했다. 양회동 열사의 유서에 담긴 노동자가 주인이 되는 세상을 꼭 만들어달라는 말을 어떻게 하면 조금이라도 더 지킬 수 있을지 생각했기에, 급하고 부족한 계획이나마 진행하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당연하지만, 지금 온 한국 땅에 거세게 몰아치는 탄압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멈출 수 없다. 이 광풍에 스러진 동지들의 바람을 어떻게 저버릴 수 있으며, 지금 이 순간에도 고통받고 있는 이들을 또 어떻게 외면할 수 있다는 말인가? 이에 우리 말랑키즘은 윤석열 퇴진이라는 구호에 합류할 것이고, 더욱 굳센 결의로 연대하고 투쟁할 것이다. 다만 그것은 우리가 윤석열 퇴진정권교체가 마법처럼 모든 것을 한 순간에 해결한다는 미신을 믿기 때문은 결코 아니다. 이 사태들을 만들어낸, 만들어낼 수 있게 허락한, 거미줄처럼 촘촘하게 얽힌 억압적 현 사회 구조를 파괴하지 않고 그저 거미만 다른 종으로 교체한다고 이 문제들을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는 없다. 우리는 복수와 분노를 우리의 동력으로, 더 근원적이고 더 핵심적인 것들에의 공격을 쉬지 않을 것이다.

 

   중세 유럽의 마녀사냥은 공동체 중심 사회를 가족 단위로 파편화하고 자본주의를 도입하는 데서 비롯된 것이었다는 설명이 있다. 농사지으며 자급자족하던 대중을 지배계급이(물론 이때라고 지배계급이 없었던 것은 아니나 그 지배계급을 몰아내고 다른 지배계급이 그 자리를 대체하기 위해) 한입에 삼킬 수 있는 크기로 조각내는 과정이었다는 것이다. 필자는 그 설명에의 동의 여부 이전에, 그 설명의 과정이 작금의 윤석열 정권의 노조 탄압과도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이 서로를 신뢰하지 못하게 만드는 것, 사람들이 스스로의 힘으로는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고 믿게 만드는 것, 그리하여 결국 너희는 지배받을 때 그나마 먹고 사는 걱정이나 하며 안전히 살아갈 수 있다고 세뇌하는 것. 국가와 자본이 이렇게도 날뛰며 발악하는 이유는 바로 여기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는 반대로, 국가와 자본이 그렇게나 우리를 두려워한다는 것이다. 국가와 자본의 공갈과 협박에도, 살인과 사기에도 흔들리지 않고 그것을 함께 뭉쳐 넘어서는 대중의 힘을 누구보다 잘 알고 두려워하기에, 그들은 그렇게 하고 있다. 우리 아나키스트는 이 힘을 조건 없이 온전히 믿는다. 무언가 더 중요하게 해결해야만 하는 선결과제가 있다거나, 그 힘을 회복하기 위해 다른 권력을 만들어내야 한다는 조건부 믿음이 아닌, 그저 사실 그 자체로의 사실을 믿는다. 이 힘에 대한 우리 모두의 믿음을 되찾기 위해 서울대학교 아나키즘 소모임 검은 학과 서강대학교 아나키즘 소모임 검은 알바트로스는 앞으로도 학내외로 꾸준히 아나키즘이라는 우리의 방법론을 계속해서 소개할 것이다.

 

   끝으로, 앞서 말한 것처럼 이번 일정들을 준비하고 진행하기는 결코 손쉬운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서울대와 서강대 곳곳에 붙인 조문단 홍보 대자보 제목에서 이야기했듯우리는 인간이기에, 인간이어야 하기에”, 열사의 투쟁을 알리고 윤석열 정권의 폭압을 폭로하는 행사를 치렀다. 앞으로 윤석열을 끌어내릴 투쟁에 합류할 여러 조직들의 일정에 앞서 효시를 올린 데에, 다소간의 아쉬움을 뒤로 하고, 그 길의 첫걸음을 내딛었음에 의의를 두고자 한다. 금번 두 행사에 검은 학과 검은 알바트로스의 학생 동지들뿐만 아니라 여러 대학 학생들도 참여했음을, 그리하여 국가와 자본의 탄압에 대해 아주 조금이나마 더 널리 알릴 계기가 되었으리라는 점을 믿는다.

   우리는 앞으로도 더 다양하고 많은 노력을 통해 국가와 자본이 마녀의 숲이라 부르는 곳에 사실 해방의 길이 있음을 내보일 것이다. 그곳에서 들리는 주문은 평등을 위한 외침, 억압을 타파하기 위한 노래임을 알릴 것이다. 그리하여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그 누구도 홀로 남겨지지 않도록, 우리는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들의 상호부조’, 말랑키즘은 고 양회동 동지가 우리 모두에게 부탁한 세상을 꼭 이룰 것이다.

 

 

2023521

우리들의 상호부조’, 말랑키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