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정우형이라는 사람을 모릅니다, 그러나...
―삼성전자서비스 정우형 열사 추모문화제 및 영결식 연대 보고
286, 이것은 낡은 컴퓨터의 이름이 아니다. 삼성전자서비스 노동조합에 대한 삼성 자본의 탄압에 맞서 싸우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정우형 열사의 명예회복을 보장하는 합의를 이끌어낼 때까지 걸린 시간이다. 3일장을 95번, 49재를 5번 치르고도 남을 시간 동안 유가족과 연대 단위들은 삼성측의 노조 탄압에 대한 사죄를 받고자 싸워왔다. '우리들의 상호부조', 말랑키즘은 거의 1년이 지나서야 치를 수 있게 된 정우형 열사의 장례에 부족하게나마 함께하였다.
이 투쟁에 대해 이야기하려면 정우형 열사와 삼성전자서비스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싸움에 대해 먼저 이야기할 필요가 있다. 삼성전자 제품의 수리 등 서비스를 전담하는 삼성전자서비스의 정비 노동자들은 명함에도, 조끼에도 삼성전자의 이름을 달고 다니지만, 실상은 삼성전자도, 그 자회사인 삼성전자서비스에 고용된 노동자도 아니었다. 이들은 삼성전자에 딸린 수많은 협력업체에 고용된 노동자들로, 사측의 외주화 정책에 따라 계약이 해지되면 언제고 백수가 되기 십상인 비정규직이었다. 금속노조 노동연구원에 따르면, 삼성전자서비스는 협력업체에 수리 업무를 맡기는 비용인 서비스 대행료를 꾸준히 깎아오는 한편 모기업인 삼성전자의 부품을 계속 비싸게 사오는 식으로 하청 노동자를 더 쥐어짜 삼성전자에게 이윤을 갖다바쳐왔다. (홍석범, 2013) 한편으로 삼성전자라는 이름에 걸맞는 서비스를 제공한다면서 고객들에게 항의가 들어오면 해당 정비 노동자에게 불이익을 가했지만, 그에 걸맞는 임금은 주지 않아 에어컨 수리 노동자의 경우 비수기에는 고작 월 100만 원 정도만을 쥐어준 것은 덤이다.
2013년 7월 14일, 삼성전자서비스 노동자 400여 명이 이런 현실을 조금이라도 바꿔보고자 금속노조 삼성전자서비스지회를 출범시켰다. 정우형 열사 역시 여기에 함께한 노동자 중 한 명이었다. 사측에서는 특근수당이라는 당근과 취업규칙 개정 및 노조 조합원 해고라는 채찍을 앞세워 노조 파괴에 나섰다. 최종범 열사, 염호석 열사 등 많은 노동자들이 여기에 희생당했고, 정우형 열사 역시 2015년 자신이 근무하던 삼성전자서비스 천안센터에서 1인 시위를 벌이는 등 투쟁하는 와중에 극단적인 선택을 시도했다가 목숨을 건진 적이 있었다.
그리고 2018년 4월, 삼성전자서비스 노동조합에도 볕이 들었다. 이재용 당시 부회장의 뇌물혐의 등 각종 범죄에 대한 수사망이 좁혀오자 불법파견, 노조파괴 등에 대한 면죄부라도 받으려 사측이 노동조합에 손을 내민 것이다. 삼성은 수리 노동자에 대한 직접고용과 처우개선(근데 이제 경력과 임금 후려치기, 그리고 콜센터 노동자 간접고용을 곁들인), 삼성전자서비스지회의 활동을 보장하는 대신, 노동조합은 사측에 제기한 불법파견, 임금체불 등 소송을 취하하고 앞으로 관련 소송을 하지 않겠다는 조건이었다. 자본이 보기에 얼마나 아름다운 합의였는지, 한 경영학과 교수는 경제지에 '대한민국의 희망'이라며 기고를 했을까? (노용진, 2018) 그러나 정우형 열사를 비롯한 해고 노동자에게는 아름다운 합의도 아니요, 희망은 더더욱 아니었다. 합의 과정에서 해고 노동자들에 대한 복직과 명예회복이 빠졌기 때문이다.
열사는 실의에 빠진 해고 노동자 동지들을 모아 다시 삼성전자서비스 해고자복직투쟁위원회 (이하 해복투)를 결성하고 복직 투쟁에 나섰다. 고작 삼성전자 이름이 박힌 두둑한 월급봉투를 받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하청 노동자로서 자신들의 진짜 사장이 삼성임을 인정받고, 사측이 저지른 폭력적인 노조 탄압의 희생자로서 그들이 저지른 범죄를 스스로 인정하게 하기 위해서였다. 그렇게 그는 평소에는 냉난방 장비를 고치는 수리공으로 살면서, 또 전국 도보투쟁을 벌이는 등 투사로서 살아왔다.
그러나 끝내 그는 쓰러졌다. 가석방되어 사실상의 면죄부를 받고 의기양양한 이재용 부회장이 그가 사과를 요구하며 보낸 편지를 내치자 살아서 싸워 이길 수 있다는 희망을 포기한 것일까. '나를 화장해 삼성에 뿌려 달라!'는 유언을 남기고 정우형 열사는 차가운 주검으로 발견되었다. 그러나 죽은 공명이 산 중달을 이긴다는 말이 이런 것이었을까? 열사의 죽음에 응답하고자 수많은 노동자들과 여러 단체에서 다시 연대의 목소리를 내기 위해 달려왔다. 사측의 알박기 집회 신고와 극우단체에 떠밀려 강남역 사거리가 아닌 사옥 뒷켠에 분향소를 차렸지만, 수많은 평범한 이들이 그의 죽음을 헛되게 하지 않고자 분향소를 지키며 싸워왔다. 그와 함께 싸워온 해복투 동지들, 경기도에서 온 건설 노동자들, 비슷한 처지의 LG 해고 노동자 등 수많은 이들이 함께했다. 필자 역시 다른 분들에 비하면 부끄러울 정도로 적지만 여러번 분향소 지킴이로 나섰고, '우리들의 상호부조', 말랑키즘 역시 함께 분향소를 찾아 투쟁 상황을 듣고 추모에 나섰다.
그렇게 많은 이들이 싸운 끝에 드디어 장례를 치르게 된 것이다. 열사가 보냈지만 삼성과 이재용이 내친 편지에 담긴 노조파괴에 대한 사과, 해고 노동자들의 권리회복을 담은 합의가 이루어진 후였다. 이제야 비로소 고인을 차가운 영안실에서 꺼내주고, 그의 뜻을 조금이나마 이루었기 때문이었을까? 추모문화제와 영결식에서는 많은 문화 노동자들이 참여하여 고인을 위로하는 공연을 펼치는 등, 286일만에 치르는 장례식장은 장례식이라기보다는 작은 축제에 가까웠다.
추모문화제에서 많은 이들이 추모사를 남겼다. 그 중 가장 가슴에 와닿았던 말 중 하나는 전국건설노동조합 경기중서부건설지부 김호중 지부장의 발언이었다. "사실 저는 정우형이라는 사람을 잘 몰랐습니다." 사실 나 또한 그랬다. 삼성전자서비스의 투쟁에 대해서는 대학 새내기 시절부터 알았고, 해고 노동자들의 소식 역시 건너건너 들어왔지만, 그에 대해서는 잘 몰랐다. 그러나 나를 비롯해 이렇게 많은 이들이 그 잘 모르는 이의 죽음에 함께 슬퍼하고, 그의 명예회복을 위해 싸운 것은 왜일까? 용산, 여의도, 강남에서 떵떵거리고 사는 이들이 '우리가 남이가'를 외치며 온갖 특권을 차지할 때, 우리 민중이 살 길은 생판 모르는 '남'이라도 나와 같은 어려움에 처했다면 손을 맞잡고 함께 싸워야 한다는 '상호부조'의 본능 때문 아니었을까?
'우리들의 상호부조', 말랑키즘은 앞으로도 수많은 '남'들의 손을 기꺼이 맞잡을 것이다. 원래 아는 사람이건, 모르는 사람이건, 자본과 국가의 탄압에 신음하는 이들이라면 기꺼이 함께 싸울 것이다. 그렇게 수많은 '남'들이 상호부조와 연대라는 이름으로 함께 싸울 때, 비로소 '우리가 남이가'를 외치던 지배자들은 끝내 쓰러질 것이라고 우리는 믿어 의심치 않는다.
2023년 3월 5일
'우리들의 상호부조', 말랑키즘
참고자료
홍석범. (2013) " [이슈페이퍼] 또 하나의 가족? 또 하나의 비정규직! 삼성전자서비스 노동자들의 이야기." 금속연구원 이슈페이퍼 8월호. http://www.metalunion.re.kr/bbs/board.php?bo_table=B04&wr_id=68&page=7
노용진. (2018) "[기고] 삼성전자서비스 노사가 보여준 희망." 매일경제, 11월 8일. https://www.mk.co.kr/news/contributors/8549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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