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공지사항/성명 및 활동

지금 당장, 바로 이곳에서―2022년 전태일 열사 제52주기 전국노동자대회 참여 보고

by 말랑키즘 2022. 11. 13.

지금 당장, 바로 이곳에서

2022년 전태일 열사 제52주기 전국노동자대회 참여 보고

 

 

올해도 우리들의 상호부조’, 말랑키즘은 전태일 열사 기일에 즈음하여 개최되는 전국노동자대회에 함께 했다. 작년에 이어 두 번째 참가로, 지난번보다 훨씬 많은 동지들과 함께 전태일 열사의 정신을 되새길 수 있게 되어 감사한 시간이었다. 특히나 이번에는 서울대학교 아나키즘 소모임 검은 학동지들의 깃발로 말랑키즘 깃발 아래 함께 걸고 참가해 더욱 뜻깊은 시간이었다. 더욱더 많은 현장에서, 더욱더 많은 학교에서 말랑키즘과 뜻을 함께하는 이들을 모아낼 수 있도록 이후로도 끊임없이 박차를 가하겠다는 의지를 되새긴다.

 

말랑키즘의 이번 노동자대회는 사실 노동자대회 당일인 1112일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었다. 한 주 전인 115일에는 서울대학교 내에서 비정규직 없는 서울대 만들기 공동행동동지들 및 학내 구성원들과 함께 그래서 전태일이 나랑 무슨 상관?’이라는 주제로, 2022년을 살아가는 우리가 전태일 열사를 어떻게 기억하고 왜 지금도 그 정신이 유효한지 이야기 나누는 자리를 가졌다. 이후에는 노동자대회 당일 사용할 피켓도 함께 제작했는데, ‘우리의 안전, 우리 손으로’, ‘내 일자리에 내 결정은 ㅇㄷ?’, ‘모든 기업 경영권을 노동조합에와 같이 말랑키즘이 노동자 대중에 제안하고픈 문구를 작성해 당일 사용하기도 했다.

 

또한 12일 오전 730분부터는 말랑키즘이 매주 빠짐없이 연대하고 있는 관광레저산업노동조합 세종호텔지부 동지들이 준비한 세종호텔 해고 노동자들이 제공하는 아침 조식에 함께 해 호텔 투숙객 및 명동을 찾은 많은 외국 여행객에 세종호텔의 현황을 소개하고 세종호텔 투쟁에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세종호텔지부 인스타그램(@sejonghotel_union) 팔로우를 안내했는데, 이 자리에서 투숙객들로부터 호텔에 대한 가감 없는 비판을 접할 수 있었다. 명동 한복판에 위치한 4성급 호텔이 노동자들을 해고해 조식이 제공되지 않는다는 사실에 투숙객들은 황당함을 넘어 한마음으로 분노를 표했고, 11월임에도 더운 날씨에 에어컨을 사용하려 했으나 전혀 작동되지 않는다는 사실에 경악을, 이것이 호텔 시설을 전혀 개보수하거나 확충하지 않아 아직도 중앙 냉난방을 하기 때문이며, 브라운관 TV에서 그나마 코딱지만 한 LCD 모니터를 객실에 설치한 것이 2010년대가 되어서나마였다는 대목에 이르러서는 도무지 무슨 표정을 지으면 좋을지 모르겠다는 표정이었다.

그럼에도 쉐프인 고진수 지부장 및 세종호텔지부 조합원들이 신선하고 질 좋은 재료로 선보인 조식은 호텔 조식이라는 명성에 걸맞은 것이었다. 필자는 오믈렛을 그다지 즐기지 않는 편임에도 고진수 지부장이 직접 팬을 잡고 선보인 오믈렛은 몇 번이나 줄을 서 다시 먹을 만큼 엄청난 것이었고, 토스트, 샌드위치 등 모든 메뉴가 너무나 훌륭했다. 얼마나 세종호텔지부 조합원들이 이 행사에 만전을 기하며 그들의 자부심을 다 했는지 온몸으로 이해할 수 있었다.

조식이 진행되는 내내 조합원들의 표정에는 생기가 떠나지 않았다. 노동자의 자부심과 긍지로 노동자대회의 하루를 시작할 수 있어 너무나 멋진 시간이었다.

 

아울러 낮 12시경부터는 전국노동자대회 집결 장소 인근에서 대회 참여를 위해 모인 많은 민주노총 동지들에게 1126일 진행될 돌아온 관광객 돌아오지 못하는 호텔리어, 세종호텔 해고자와 함께하는 으라차차! 동행”’을 홍보하고, 그 재정 마련 사업인 호텔리어가 추천하는 여행용 키트(구입처 bit.ly/세종호텔여행용키트구입) 판매에 연대했다. 말랑키즘 동지들 대부분이 처음 해보는 판촉이었으나, 함께, 즐겁게, 최선을 다해 진행했다.

심지어 중반부터는 굵은 빗줄기가 쏟아져 급히 매대를 철수하기도 하는 등 우여곡절이 많았으나 현장 판매로 준비한 수량을 거의 다 매진했다 하니 너무나 다행이라 여겨졌다.

 

사실 우리들의 상호부조’, 말랑키즘 역시 이번 노동자대회부터 우리의 주장을 알리는 선전물을 준비해 배포하자는 내부 의견이 있었다. 물론 이 행동 역시 많은 이에게 아나키즘을 알리는 데 있어 너무나 중요한 것임을 모르지 않는다. 하지만 말랑키즘 사무실 지척에서 투쟁하고 있는 동지들과 함께 연대해 준비한 작업들에 함께하는 것 역시 그에 못지않게 중요한 일이라고, 우리는 생각한다. 작년 노동자대회 보고문에서도 언급한 것이지만, 전태일 열사는 전태일의 시대에 그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방안을 늘 찾아 고민하며 조금씩, 계속해 그 가능성들을 타진해 왔기에 우리는 그 정신을 계승하는 것이며, 그렇기에 우리는 우리가 할 수 있는 우리의 최선을 다해 나가는 것이 그 정신을 올바르게 이어받는 것이라 여긴다. 말이 아닌 행동으로.

 

아쉬운 지점이 없지는 않았다. 우천으로 인해 대회 분위기가 살짝 어수선한 것은 그럴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이 많은 노동자 대중의 요구가 수세적인 위치에 계속 국한되는 것은 아쉽다는 말 이외에는 다른 평할 말이 없다. 노조법 2, 3조 개정이 이번 전국노동자대회에서는 주된 키워드였다. 물론 더 나은 환경으로 나아가는 데에, 조금이라도 더 유리한 조건에서 싸우기 위한 조건으로 이것이 아무런 의미를 가지지 못한다고 이야기할 수 있는 이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들의 상호부조’, 말랑키즘은 노동자 대중의 투쟁은 그것보다 아득히 더 먼 곳을 향해 곧바로 나아갈 수 있으며, 지금 당장, 바로 이곳에서부터 그것이 가능함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우리의 요구는 노조법 2, 3조 개정에 그칠 것이 아니라 더 많고, 더 커야 한다. 우리는 지금 당장 모든 노동자가 일하다 죽지 않기 위해 노동자가 직접 기업을 경영할 수 있게 해야 하며, 모든 노동자가 일하다 다치지 않기 위해 노동자 스스로 현장의 안전을 점검하는 데로 나아가야 한다. 우리는 그럴 수 있다. 우리가 우리 일터를 누구보다 가장 잘 알고, 우리가 우리 일터에서 모든 재화를 생산해 내는데, 우리가 아니라면 누가 감히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말인가?

 

그러니 우리는 더욱 큰 자신감으로, 더욱 굳센 확신으로, 더욱 완벽한 사실에 기대어 투쟁해 나갈 것이다. 지금 당장, 바로 이곳에서부터 전 세계 노동자 대중은 모든 것을 스스로 직접 해 나갈 수 있기 때문에.

 

 

20221113

우리들의 상호부조’, 말랑키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