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 2일, ‘우리들의 상호부조’, 말랑키즘은 강원도 강릉으로 1박 2일 MT를 떠났다. 우리 말랑키즘 정회원 외에도 학생사회를 대상으로 개최한 세미나에서 만나게 된 학생 동지들도 함께 하는 자리였다. 사실 우리가 타지에서 1박 등으로 묵고 온 것은 처음은 아니었지만, MT다운 MT는 처음이라 더욱 의미 깊은 자리였다. 지난 2년 간의 광주 기행, 작년 여름 5주 간의 거제통영고성조선하청지회의 대우조선 비정규직 노동자 파업, 또 굳이 포함하자면 명동 세종호텔 농성장 철야 당번까지, 말랑키즘 회원들이 함께 밤을 지샌 날은 적다고 할 수는 없다. 그리고 그때마다 우리는 낮에는 투쟁현장에 연대하고, 밤에는 집회에 참여해서 뺀 땀만큼 즐거운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이번 MT도 예외는 아니었다. 비록 이번에는 주된 명목이 실컷 노는 것이었지만, 첫날 일정에는 유천초등학교 선전전에 연대하며 그간의 전통을 지키는 MT가 되었다.
강원도에 위치한 혁신학교인 유천초등학교 선생님들의 투쟁은 2021년 8월, 강원도 교육청이 학생 · 교사 · 학부모를 불문, 여러 사람의 의사를 자의적으로 무시한 채 자율학교 지정을 취소하는 데서 시작되었다. 2개월 뒤 타 지역으로 부당하게 발령받은 세 명의 유천초 선생님들은 그해 11월부터 이듬해 7월 사이, 교육청 앞에서 농성 및 18일간의 단식투쟁 끝에 강원도 교육청과 징계 발령 취소 및 원 근무지로의 인사조치를 하는 데에 합의하기에 이르렀다. 그와 더불어 올해 3월 교육감과의 면담도 약속받았지만, 약속 당일인 27일, 교육감은 면담에 나오지 않았다. 그때부터 선생님들은 교육감이 약속한 내용을 이행하고 사과받기 위해 싸우고 있다.
느닷없이 우르르 몰려온 말랑키즘 MT 인원들을 본 유천초 선생님들과 연대 동지들은 뜨거운 환영과 함께 우리에게 발언 요청을 하며 마이크를 건네주었다. 구미 등 우리보다 훨씬 먼 지역에서 연대하기 위해 강원도 교육청을 찾은 다른 단위는 우리 말고도 많았고, 덕분에 교육청 현관 앞을 빼곡히 둘러쌀 수 있어 뿌듯했지만, 또 한편으로는 모든 현장이 겪고 있는 ‘연대의 발걸음’이라는 어려움을 새삼 다시 느낄 수 있었다. 세상에는 셀 수 없이 많은 부당하고 억울한 사건이 있고, 연대를 필요로 하는 투쟁 현장 역시 그 수가 무수히 많다. 서울만 해도, 관심을 가지고 들여다보면 시내 골목골목마다 투쟁 현장을 어렵잖게 발견할 수 있다. 그 모든 현장이 매번 투쟁의 풍족한 동력이 될 연대의 손길을 구할 수는 없지만, 그럼에도 어떻게든 투쟁을 멈출 수는 없다. 이 나라 인구의 절반이 산다는 서울이 이 지경인데 서울 외 지역의 상황이라고 크게 다를 수 있을까? 우리 말랑키즘 역시 최대한 여러 현장에 연대하고자 노력하지만, 압도적인 수의 투쟁 현장 앞에서 이는 새 발의 피라는 느낌을 짙게 받을 때가 많다. 몸이 몇 개라도 모든 현장에 함께할 수 없을 것 같고, 어쩌다 다른 일정이 겹치기라도 하면 발언 때 주문처럼 되뇌이는 ‘끝까지 늘 함께 하겠다’는 다짐을 지키는 것은 지난할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우리들의 상호부조’, 말랑키즘은 결코 우리 한 조직의 노력만으로 이 세상을 구원하겠다는 헛된 망상을 하지 않는다. 아니, 오히려 그 반대를 믿기에 우리는 우리 스스로를 아나키스트라고 부른다. 세상은 혼자서 살아갈 수 없고, 그런 세상을 혼자 힘으로 바꾸는 것은 더더욱 불가능하기에 우리는 조직적으로, 하지만 자발적으로 활동한다. 아나키즘은 아나키스트라고 스스로 칭하는 이들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그것이 어떤 형태, 무슨 이름을 가지고 있든 방방곡곡에서 평등과 자유의 이름으로 연대와 상호부조의 손길을 내민다면 그것이 바로 아나키즘의 본질과 가장 가까운 것이고, 바로 그것이 충분함을 넘어 온 세상에 넘쳐나게 하는 것이 우리의 궁극적인 목표이다. 우리는 바로 그것을 위해 물론 한여름 찌는 더위에도 불구하고 오늘도 연대의 발걸음을 놓지 않지만, 그 과정에서 지쳐 넘어지는 이가 없어야 하기에 우리들 스스로의 상황을 더 잘 점검하기 위해 쉼이 필요하기도 하다. 이번 MT는 우리들이 서로 어떤 마음으로, 어떤 상황에서, 어떤 노력으로 아나키즘을 실천하고 있는지, 실천했는지, 실천할 것인지 되돌아보는 자리였고, 자리였어야 했다.
밤이 내려앉은, 끝이 보이지 않고 하늘과 닿은 점도 분간할 수 없는 바다를 마주하고 함께 부른 ‘파도 앞에서’는 이런 우리가 어디로 나아가야 할지를 가늠할 수 있게 해주었다. 노래 가사처럼 ‘멀리선 느낄 수 없’는 것이기에, 우리는 이번의 쉼을 토대로 다시 더 가까이, 그 모든 억압과 착취, 차별의 현장에 우리의 온몸을 그대로 던질 것이다.
2023년 8월 8일
'우리들의 상호부조', 말랑키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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