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월 11일, ‘우리들의 상호부조’, 말랑키즘은 서울대학교 아나키즘 소모임 ‘검은 학’과 함께 전국노동자대회(전노대)에 참여했다. 이는 11월 4일 ‘검은 학’이 서울대학교에서 대학원생노동조합과 함께, 지난 8월에 윤석열 정부가 발표한 삭감된 2024년 과학기술계 예산안이 대학원생과 학부생에게 끼칠 악영향을 토의하기 위해 개최한 “R&D예산 삭감 대응 간담회”의 연속선이었다.
이 삭감될 예산안이 아무런 반대 없이 통과될 경우 과학기술계 전반에 악영향을 끼칠 것이라는 사실은 당연하다. 하지만 이번 간담회를 통해 우리는 이 말고도, 새로 자리잡으려는 신진교수, 일자리를 찾는 박사 후 연구원들, 그리고 이제 막 대학원에 진학하는 학생들이 가장 큰 피해를 볼 것이라는 사실을 확인하였다. 복잡한 이야기이지만, 간략하게 설명하자면, 예산이 발표된 바와 같이 16% 이상 깎인다면, 당연하게도 이미 경력을 쌓고 성과를 보인 이들에게 피해를 가게 하는 것보다, 새로운 연구실과 그 연구실을 채울 인원을 줄이는 쪽으로 모든 결정이 내려질 것이다. 뿐만 아니라, 대학원생 전체의 경우, 상당수가 과제참여연구비로 생활비를 조달하는데, 정부 지원이 줄어든다면, 막막해진다. 결국 코로나 때처럼, 피해의 상당부분은 아직 자리를 잡지 못한 약자들의 몫이라는 것이다. 어딘가 익숙한 이야기가 아닌가?
학생이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노조나 만들고 정치질이나 하고 있냐고 비난하는 이에게 이번 사태를 보여주고 싶다. 물질적이지 않더라도, 지식 또한 가치를 지니고, 그렇기에 대학원생도 엄연히 노동을 통해 가치를 창출한다. 하지만 그런 지식을 생산하려는데 받아야 하는 돈을 안 주겠다니. 하고 싶다는 공부를 하기 위해 돈을 벌다 목숨을 잃거나[1], 그런 공부를 하다가 힘겨움을 견디지 못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들은 이미 발생한다. [2] 과학기술계 예산이 과감하게 깎이기도 전에 이러는데, 내년에는 또 얼마나 더 치열해져야 하는가? 공부하는데 목숨을 걸어야 하냐는 것이다.
하지만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하지 못하거나, 별 위기감을 못 느끼는 것은 학계 밖에 있는 이들에만 한정되지 않는다. 놀랍고 안타깝지만, 이런 반응을 보이는 이들 중에는 수많은 학생들도 있다. 이들은 본인은 ‘정치적인’ 활동과는 거리를 두고 싶다면서 이 상황을 외면한다. 물론 그들이 진짜로 이 상황이 무엇을 뜻하는지 몰라서 보고만 앉아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사실은 다른 사람이 대신해서 우리들의 문제를 해결해 줄 것이라는 안일한 믿음에 손 놓고 있는 것이 아닐까 의심해본다.
하지만 정부가 이렇게 학계와 어떠한 논의도 거치지 않은체 독단적으로 예산 감축시키려 한다는 상황에서부터 문제가 보이지 않는가? 우리 상황을 모르는 이가 어떻게 만족스럽게 우리 문제를 해결해줄 수 있을까? 아니, 우리 밥그릇이 다른 이의 손에 들려, 우리 마음은 무시한체 늘어났다 줄 수 있는 상황이 어떻게 합당할 수 있냐는 말이다. 이런 불의를 보고 본인은 ‘정치적인 일’과는 상관없다며 방관할 수는 없다. 우리가 일하는 만큼 받고, 그 과정에서 인간으로서 존중받고 싶다는 당연한 주장은 다른 누구의 입도 아닌 우리들의 입으로 내야 하는 입장이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최종 해결책은 우리들의 밥그릇이 보다 자비로운 정치인의 손에 들리는 원상회복이 아니다. 예산안을, 그리고 과학계를 둘러싼 모든 결정을, 과학계에 관여된 모든 이들의 능동적이고 직접적인 논의로 결정되는 근본적인 자치를 위한 변화가 필요하다.
이런 자치를 위한 ‘검은 학’과 말랑키즘의 입장을 사람들에게 알리 위해 우리는 전노대에 참여했다. 우리가 하는 말이 불의에 대항하는 전국의 모든 노동자가 하는 말과 근본적으로 다를 것이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학계에서 자치가 필요한 것과 같이, 노동자 투쟁에서도 마찬가지로 자치가 필요하다. 우리 말랑키즘이 꾸준히 주장해왔듯, 우리들의 문제를 우리가 직접
해결하러 나서지 않는 한, 이런 일은 끊임없이 계속되고 악화할 것이다. 그 어떤 정치인이 정상에 올라도, 그 어떤 정당이 정권을 잡아도, 대중의 의견을 무시하고 소수의 마음대로 모두의 자원을 낭비할 수 있는 권력구조가 남아있는 한, 우리는 싸움을 멈출 수 없을 것이다.
오로지 능동적인 조직화와 적극적인 연대만이 해결책이다. 그래, 억압받는 모두가 해방되는 날까지 우리는 아나키가 필요한 것이다.
[1] 남보라, "이왕 울 거 밖에서 울자"...건설 현장서 29세 아들 잃은 노모의 절규, 한국일보, 2023.10.21, https://v.daum.net/v/20231021150002401
[2] 전지현, 이예슬, “학업 부담” 서울대 대학원생의 죽음…“남일 아니다” 말하는 대학원생들, 경향신문, 2023.10.15, https://m.khan.co.kr/national/national-general/article/202310151526001
2023년 11월 21일
'우리들의 상호부조', 말랑키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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