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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ne are free, until all are free―제134주년 메이데이 참가 보고

알 수 없는 사용자 2024. 5. 5. 14:41

None are free, until all are free―제134주년 메이데이 참가 보고

 

   한국에서는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모든 아나키스트가 동의하는 몇 안 되는 문구 중에는 ACAB라는 말이 있다. All cops are bastards, 즉 모든 경찰은 개새끼라는 말이다. ‘우리들의 상호부조’, 말랑키즘 역시 비단 작년 세종호텔의 고소에 의한 국가권력의 수사 등을 예시로 들지 않더라도, 이 말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그나마 경찰의 장점 아닌 장점을 꼽으라고 한다면, 그것은 어쩌면 일관성이 아닐까 싶다. 이번 역시 경찰은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일관되게 개새끼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미 적지 않은 동지들이 이에 대해 이야기를 접한 듯 하지만, 우리는 다시 한번 이곳에 이를 적어둔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이하 ‘전장연’) 동지들에 대한 경찰의 마구잡이식 폭력 역시 이제 와 굳이 새로울 것 없어 슬픈 일이지만, 이날은 그러면 안 됐다. 민주노총이 집회신고를 내고 전장연 동지들도 함께 집회를 할 것이라고 사전에 경찰에 고지까지 한 상황에서, 경찰은 전장연 동지들의 휠체어를 막아섰다. 그들의 주장은, 특히 자신의 발언에 책임을 지겠다고 수 차례나 반복해 말하던 ‘31(혹은 32)기동대 이윤형 경위’의 말에 따르면 ‘민주노총이 전장연의 집회 장소 진입을 막아달라’는 것이었다. 그 자리에 있던 모두가 생전 처음 들어보는 신박한 개소리에 어안이 벙벙할 따름이었다. 민주노총이 내일 해산하기로 하는 이상한 경우가 아니고서야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은 비단 경찰이나 민주노총 조합원뿐 아니고서도 대한민국의 모든 사람이 잘 아는 일일 것이다. 하지만 경찰은 끝까지 이런 해괴망측한 자신들의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이에 대해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이 항의하고 책임자를 불러달라고 요구하자 경찰은 곧바로 늘 그렇듯 채증 카메라를 치켜들었지만, 이 역시 아무런 근거가 없는 위법한 조치였음은 둘째 문제일 것이다.

   말 같지도 않은 이야기에, 심지어 대화를 할 생각도 전혀 없는 이들에게 말로만 맞서는 것은 이 불합리하고 부조리한 상황을 그대로 놔두겠다는 것에 다름 아니고, 결국 그 자리에 있던 모두가 경찰들이 길을 열 수 있도록 도와주고자 배려했다. 집회신고를 하고 집회 중인 공간에, 주최 측이 입장을 허락하고, 심지어 초청한 이들을 경찰들이 꽁꽁 가두리 양식마냥 에워싸고 감시당하는 모욕을 겪게 놔두는 일은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다. 경찰이 자신들은 길을 비켜주고 싶으나 우리는 알 수 없고, 이해할 수도 없는 이유로 몸을 움직일 수 없다면, 그들이 진정 원하는 바를 이룰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우리가 말하는 ‘상호부조’의 정신 아니겠는가. 그 자리에 있던 여러 동지들이 힘을 합쳐 경찰을 도와주기 시작했고, 힘겹게 힘겹게 전장연 동지들이 한두 명씩 집회 장소에 들어올 수 있었다. 이후 경찰들은 역시나 우리는 알 수 없는 이유로 결국 움직일 수 없던 본인들의 몸을 스스로 움직이는 기적을 일으켜 길을 완전히 열었고,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은, 전장연 동지들이 민주노총에 ‘휠체어가 행진 대오 중간에 배치되면 혹시 모를 부상자가 생길 수도 있으니 행진을 시작하면 대오 뒤쪽으로 함께 하겠다’고 전달한 것을 민주노총은 경찰 측에 ‘전장연의 요청대로 행진이 시작되면 대오 뒤편으로 함께할 수 있도록 하라’고 전했는데, 경찰은 제멋대로 이를 ‘그러면 행진 시작하기 전까지는 전장연이 들어가지 못하게 해야겠구나!’로 이해했다는 것이다.

 

   메이데이 보고문에 굳이 경찰이 전장연 동지들의 진입을 막은 이야기를 길게 쓰는 것은 다른 이유가 아니다. 1886년 시카고에서 일어난 헤이마켓 사건에서 누명을 쓰고 국가권력에 의해 살해된 아나키스트 열사 7명의 일과 오늘의 이 일이 얼마나 다른지 우리는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고, 모두가 평등하고 자유로워야 한다는 이야기를 한 사람들은 그때나 지금이나 국가에 의해 ‘테러리스트’라는 누명을 써야만 했다. 헤이마켓 사건 근처에 있지도 않았던 아나키스트 열사들이 그러했고, 누구나 요금을 내면 이용할 수 있는 대중교통에 탑승하려던 전장연 동지들 역시 그러했다. 집회 장소 한 편에서 일어난 작은 소동 내지 해프닝이라기에는, 이 사건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자유와 평등이 아직도 얼마나 요원한 것인지를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이 글의 제목과 같이, ‘모두가 자유롭기 전에는 그 누구도 자유롭지 않다’.


   민주노총 현 지도부에서 이 일을 알았는지 여부는 불분명하다. 하지만 만약 이 사실을 알고 민주노총 현 집행부에서 아무런 행동도, 아무런 항의도 하지 않았다면, 또 하지 않을 예정이라면, 우리는 그 자리에서 경찰의 이동을 도왔던 사람들로서 심히 유감을 표하지 않을 수 없다. 늦든 빠르든, 민주노총은 민주노총의 권리를 심각하게 침해한 경찰에 대해 분명한 사과와 재발방지 대책안을 확답받아야만 할 것이다. 그렇지 않고 이번 일을 묵과한다면, 앞으로 어느 조합원이, 어느 연대 단위가 민주노총을 신뢰하여 함께할 수 있겠는가.

   혹 민주노총 지도부가 이 일보다, 당일 무대 앞에서 벌어진 일련의 사건(말랑키즘이 위치한 서울시청 광장 인근에서는 무대가 보이지도, 스피커를 통해 발언이 들리지도 않았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 역시 의문이다), 즉 조합원들이 양경수 위원장에 대해 항의의 목소리를 낸 데에 대해 더 신경을 쓰고 있다면, 그야말로 정말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다시 생각해 보시라 권유하고 싶다. 그간 여러 소속 단위, 연대 단위들이 문제를 제기해 왔던 부분에 대해서도 다시 심사숙고하고, 왜 항의하던 조합원들이 굳이 ‘그날’ ‘그 자리에서’ ‘그런 방식으로’ 항의의 목소리를 낼 수밖에 없었는지에 대해서도 재차 삼차 살필 수 있기를 진심으로 희망한다. 제134주년 메이데이를 맞아 민주노총이 진정으로 ‘인간의 존엄성과 평등을 보장’한다고 선언하고 있는 것이 부끄럽지 않기 위해서는, 반드시 1. 경찰의 집회 방해와 연대단위에 대한 폭력에 대한 사과 및 재발 방지 확답 요구, 2. 현 지도부의 항의에 대한 숙고 및 수용, 이 두 가지가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2024년 5월 4일
‘우리들의 상호부조’, 말랑키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