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이미 함께 살고 있고, 함께 살아야 한다―2024 세계노동절 이주노동자 메이데이 집회 참가 보고문
우리는 이미 함께 살고 있고, 함께 살아야 한다
―2024 세계노동절 이주노동자 메이데이 집회 참가 보고문
노동절을 앞둔 일요일인 2024년 4월 28일, 서울역 광장에는 다양한 언어가 다양한 사람들 사이에서 오가고 있었다. 민주노총, 이주노조, 이주노동자평등연대, 오산이주노동자센터가 공동주최한 <2024 세계노동절 이주노동자 메이데이>에 참여하기 위해 모인 이들이었다. '우리들의 상호부조', 말랑키즘 또한 노동절 일정의 일환으로 이주노동자 메이데이 집회에 함께하였다.
왜 이주노동자들은 5월 1일이 아닌 일요일에 모였을까, 아니 모여야 했을까? 그 대답은 이날 집회에서 우다야 라이 이주노조 위원장이 외친 말로 대신할 수 있을 것이다. "5월 1일 노동절에는 모든 노동자가 쉰다지만, 이주노동자들은 대부분 일하기 때문에 쉬지 못해 오늘 일요일 이주노동자 메이데이 집회를 합니다. 이주노동자들의 상황이 어떤지 이것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이주노동자가 없으면 한국 경제는 돌아가지 못하겠지만, 우리들은 도입 시작할때부터 지금까지 무권리 상태에 놓여있는 것입니다."1) 우리가 최소한으로 누리는 공휴일을 비롯한 쉴 권리조차 제대로 누리지 못하는 이주노동자의 현실이 일정에서조차 드러나는 것이다.
이날 집회에는 다양한 현장에서 일하고 있는 이주노동자들이 목소리를 내었다. 가족센터에서 이주여성을 위한 통번역을 하고 있는 여성 이주노동자, 농장에서 일하다가 임금을 체불당한 이주노동자, 같은 일을 하는데도 피부색, 성별, 국적을 이유로 차별받는 회화강사 이주노동자 등, 고향도 다르고 하는 일도 각자 다르지만 목소리는 한결같았다. "우리는 노예가 아니다!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우리는 인간이다!"
이전과 달리 한국 사회 역시 이주노동자는 선택의 문제가 아닌 우리 곁에 실존하는 존재라는 사실을 깨닫고 있으며, 이주노동자가 사회에서 차지하는 비중에 대해서도 많은 이들이 이해하고 있다. 건설업에 종사하는 필자의 아버지는 점심을 먹으러 식당에 가면 돼지불고기 말고 닭요리는 없냐고 묻는 습관이 들었다. 현장 인부의 상당수가(아버지의 표현을 그대로 빌리면) '회교 신자'이기 때문이다. 말랑키즘의 다른 회원들 역시 이를 체감한 경험이 있었다. 우리 회원들이 여행을 떠났을 때 전통시장을 들릴 일이 있었는데, 다들 깜짝 놀랐다. 전통시장에서 물건과 음식을 파는 이들이 가게 사장을 빼면 거의 대부분 이주노동자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현실을 누군가는 혐오에 이용하고 있다. 지난 3월, 극우정당의 한 국회의원 후보는 '자국민보호'라는 미명 하에 이주노동자가 보이면 닥치는대로 잡아놓고는 미등록 이주노동자면 무단으로 체포하였다.2) 저들의 만행보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우리가 그곳에서 저들을 막아서고 이주노동자들과 함께 싸우지 못했다는 것, 그리고 이주노동자가 스스로 저들에 맞설 조직이 없다는 것이었다. 지금 우리가 공격받는 이주노동자와 함께 싸우지 않는다면, 저들의 다음 목표는 성소수자가 될 수도, 노동조합원이 될 수도, 장애인이 될 수도, 우리 자신이 될 수도 있다. 그렇기에 우리는 저 공격이 우리에 대한 공격이라고 보고 마땅히 함께 맞서야 할 것이다. 홀로 나설 필요도 없다. 우리에게는 이미 노동조합이라는 강력한 방패가 있다. 민주노조의 깃발은 정주노동자 뿐 아니라 이주노동자도 품기에 충분히 크다. 국적과 인종을 떠나 같은 조합원으로서 하나가 되는 것이야말로 이주노동자와 연대하는 가장 강력한 수단이 될 것이다.
누군가는 국가에게 저들을 처벌할 것을 요구할 것이다. 정부에서 '이주노동자 없이는 나라가 돌아가지 않는다, 이민청을 세우겠다'3) 며 이주노동자에게 전향적 태도를 내세우는 상황이니 이정도는 들어주지 않겠냐는 기대일 것이다. 그러나 국가 또한 이들을 혐오의 대상으로 이용하고 있다는 데에는 큰 차이가 없다. 여당의 비대위원장이라는 사람은 주민으로서의 정당한 참정권을 빼앗겠다고 공공연하게 떠들었다.4) 출산 장려 정책이랍시고 이주 가사노동자에게는 '월 100만원'만 주자는 말을 당당하게 떠드는 국회의원도 있었다.5) 이에 질세라 대통령이란 자는 이주노동자에게는 최저임금을 적용하지 말자, 가사노동에는 근로기준법이 적용되지 않으니 유학생을 쓰면 되지 않냐는 황당한 소리까지 내뱉는 지경에 이르렀다.6)
이러한 국가의 비호 속에 자본은 정주노동자와 이주노동자를 갈라치면서 양쪽을 모두 쥐어짜 이윤을 긁어모으고 있다. 그렇다면 노동자 민중이 가야 할 길은 하나뿐이다. 함께 살기 위해 손을 맞잡고 저들에 맞서 함께 싸우는 것이다. 그것이 우리가 말하는 '상호부조'이고, '연대'이다. 당장 눈앞의 이익을 위해 이주노동자를 혐오하고, 비정규노동자를 혐오하여 자본에 구걸하고 국가에 기대는 것은 우리 스스로 우리의 미래를 팔아먹는 것에 불과하다.
'중국집'에서 짜장면을 시킬 때부터, '원어민' 강사에게 영어 회화를 배울 때부터, 우리는 이미 함께 살고 있었다. 그리고 우리는 함께 살아야만 한다. '우리들의 상호부조', 말랑키즘은 앞으로도 이주노동자의 권리 쟁취를 위해, 그리고 인종과 국적에 관계 없이 서로 함께 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함께 싸울 것이다.
2024년 5월 3일
'우리들의 상호부조', 말랑키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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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조연주. (2024) "이주노동자 권리 쟁취가 모든 노동자의 권리…“시행 20년 고용허가제, 모든 차별과 억압의 출발”." 노동과 세계, 4월 28일. http://worknworld.kctu.org/news/articleView.html?idxno=504478
2) 조해람. (2024) "극우 정당 출마자, 전국 돌며 이주노동자에 강압적 사적 검문·체포 자행." 경향신문, 3월 27일. https://m.khan.co.kr/national/national-general/article/202403271700001
3) 정경훈, 이승주. (2023) "한동훈 "외국인 근로자 없으면 나라 안 돌아가…좋은분들 모실 것"." 머니투데이, 11월 17일. https://news.mt.co.kr/mtview.php?no=2023111717593757538
4) 이유미, 김치연. (2024) "한동훈, 재한중국인 겨냥 "투표권 상호주의 적용…민주당은 반대"(종합)." 연합뉴스, 3월 24일. https://www.yna.co.kr/view/AKR20240324018551001
5) 이주빈. (2023) "‘월 100만원 외국인 가사도우미’ 법안, 논란 속 하루 만에 철회." 한겨레, 3월 22일. https://www.hani.co.kr/arti/society/women/1084684.html
6) 김해정. (2024) "윤 대통령 “가사도우미로 외국인 유학생 쓰자”…노동계 비판." 한겨레, 4월 5일. https://www.hani.co.kr/arti/society/labor/1135325.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