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세종호텔 후원주점 연대 보고
기온은 분명 영상이었지만 바람 때문인지 아직은 겨울이 가시지 않은 것 같았던 3월 14일, ‘우리들의 상호부조’, 말랑키즘은 한강 잠두봉 선착장에서 한강을 배경 삼은 세종호텔 정리해고 노동자의 후원주점에 연대했다. 식권, 뱃지 구매 이외에도 후원주점 준비를 위한 봉사활동에 역시 참여했다.
가장 먼저 했던 식당 내 탁자에 보를 깔고 수저와 휴지를 비치하는 식의 일은 학교 축제 때 누구나 해보았을 법한 일이다. 별로 어렵지도, 힘들지도 않은, 그냥 말 그대로의 ‘잡무’이다. 하지만 뒤따른 주방 일은 규모가 남달랐다. 주방은 각 요리를 준비하는 구역으로 나뉘어져 있었고, 우리는 파스타 면을 삶는 일을 맡았다. 후원주점에 연대하기 위해 찾아온 수많은 동지들의 주문을 소화하기 위해서는 보통의 후라이팬에서 면을 삶아서는 안 됐다.
거대한 주방용 부르스타에 커다란 양동이에 올려 물을 끓이고, 거기에 한 번에 파스타 세 봉씩 삶고, 끓는 물을 버리고 찬 물로 면을 씻어야 한다. 이러한 일에 미숙했던 우리가 무사히 일을 마칠 수 있었던 것은, 미끄러운 바닥에 굵은 소금을 뿌리고, 펄펄 끓는 양동이를 맨손으로 거침없이 들어 옮기고, 파스타 물의 간을 감 만으로 아는 경험 넘치는 다른 동지들 덕분이었다. 든든한 ‘5성급 호텔리어’의 경험을 주방에서만 보았겠는가? 우리가 이후에 합류한 서빙 조 역시 엄청난 체계와 질서 아래 그 많은 이용객의 주문을 받고, 기록하고 주방으로 전달해냈다. 이제 와서 생각하니, 꽤나 규모가 큰 작업에 함께 할 수 있었다는 사실에 뿌듯하다. 덥고 뜨거운 일을 하면서도 꽤나 즐거움을 느꼈다.
말랑키즘의 활동에 관한 소식을 자주 접한 독자라면 명동역 10번 출구에 있는 ‘세종호텔’ 부당해고 노동자의 복직투쟁에 관한 이야기를 잘 알 것이다. 코로나를 핑계로 일자리에서 쫓겨나, 아직까지도 돌아가지 못한 그들의 이야기를. 이날 후원주점의 얕은 경험으로, 우리는 해고노동자가 왜 그렇게까지 복직투쟁에 열정적으로 임하는지 다시 한번 깨달았다. 뜨겁고 무거운 양동이를 맨손으로 거뜬히 들 수 있기까지 걸렸던 시간. 서빙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그 많은 봉사자를 지휘하면서도, 모든 이용객에게 음식을 빠르게 전달할 수 있는 능력을 기를 수 있기까지의 시간. 그 시간과 노력을 들이면서 일자리는 자신의 일부가 되고, 동시에 그 일터에는 자신만이 채울 수 있는 공간이 생긴다. 그런 소중한 공간에서 왜 노동자는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없으며, 그러기 위한 시도만으로 탄압의 표적이 되어야 하는가? 그렇기 때문에 말랑키즘은 세종호텔 동지들을 위해 후원과 봉사를 했다. 그들이 당당히 승리하고 일자리로 돌아갈 수 있도록. 이와 같은 크고 작은 승리들이 모이고 모여 언젠간 '내' 일터에서 '내가' 온전한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결국에는 아나키를 향해 우리는 이번 후원주점에 참여한 것이다.
세종호텔이 코로나를 핑계로 호텔 노동자들을 정리해고한 지 3년째가 되어간다. 정리해고의 명분이었던 코로나19 팬데믹은 이제 끝났다. 명동은 외국인 관광객들로 북적거리며 세종호텔 정문 역시 관광객의 손에 문이 쉴 새 없이 여닫힌다. 2023년, 세종호텔은 전년도보다 훨씬 많은 107억원의 매출, 21억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하며 예상치를 훨씬 웃도는 흑자 전환에 성공했다 [1]. 세종호텔이 주장한 ‘코로나19로 인한 경영상의 어려움’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세종호텔과 그 소유주 학교법인 대양학원은 호텔 운영을 정상화할 기미를 보이지 않는 것으로 모자라 학교법인 3대 세습을 위한 작업을 해나가고 있다.
세종호텔은 이제 세상 부끄러운 일은 그만두고 해고 노동자들을 복직시켜라. 호텔 영업을 정상화하고 4성, 5성 호텔의 위상을 되찾기 위해 노력하라. '우리들의 상호부조', 말랑키즘은 사랑하는 일터를 지키기 위한 세종노조 동지들의 투쟁에 끝까지 연대할 것이다.
2024년 4월 1일
‘우리들의 상호부조’, 말랑키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