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과 국가는 단일체다 - 중구청의 연이은 세종호텔 농성장 대집행을 규탄하며
오늘 아침, 서울특별시 중구청(중구청장 김길성)이 관광레저산업노동조합 세종호텔지부의 농성 천막 철거에 대한 행정대집행을 감행했다.
이 문구에서 기시감을 느꼈다면, 유감스럽게도 그것은 기시감이 아니다. 4월 4일 한차례 있었던 대집행 이후 중구청은 다시 한번 해고노동자의 천막 철거를 대집행했다. 천막이 헐린 지 3일만에, 노동자들의 꺾이지 않는 의지로 다시 천막을 친 지(시각장애인을 포함한 보행자의 통행 불편을 최소화하고자 이전보다 더 작은 규모로 설치했다.) 3일 만에 벌어진 일이다. 오전 8시 40분경, 중구청 인원들 3~40여 명과 백여 명에 달하는 경찰들이 천막을 에워싸더니 천막 철거를 강제 집행했다.
강제 철거 대집행 이후 3일 만에 다시 철거 대집행이라니. 듣도 보도 못한 이 사건의 실체는 행정을 빙자한 폭력임을 누구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이 불쾌한 기시감에도 불구하고 3일 전의 대집행과는 분명 다른 점이 있었다. 첫째, 대집행 진행 시 중구청은 달랑 계고서 한 장만을 챙겨왔을 뿐 관련 영장 및 책임자 증명서의 고지가 전혀 이뤄지지 않았다. 둘째, 여성 노동자가 천막을 사수하기 위해 천막 바닥에 드러누워 항의함에도 중구청 인원들은 노동자의 안전은 전혀 개의치 않은 채 바닥 팔레트를 힘으로 뺏어가고 장판을 칼로 무참히 찢어갔다. 이 현장에선 노동자의 안전에 대한 최소한의 배려도, 인권을 존중하려는 최소한의 모습도 찾아볼 수 없었다.
대집행 인원이 철수한 후 세종호텔지부의 조합원들과 우리 말랑키즘을 비롯한 연대 단위는 절차와 내용 모두 전혀 말이 안 되는 이 행태에 대해 항의하고 중구청장과 면담하고자 곧장 중구청으로 향했다. 그러나 기막힌 일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마치 중구청을 비호하듯 수십 명의 경찰병력이 정문 앞에서 방패를 들고 우리를 막아섰다. 그러고는 한참동안 구청 공무원들은 '도로교통법'을, 경찰들은 '신고되지 않은 집회와 강제해산'을 앵무새처럼 반복하여 떠들어댔다. 고지 없는 구청의 채증은 덤이었다. 기가 찰 노릇이다. 영장 없는 행정대집행에 더해 불법 채증이라니. 이쯤 되면 이들이 사실 어떤 의미에선 아나키스트가 아닐지 의문이...
들리가. 이번 사건은 '자본과 국가는 단일체'라는 명제가 분명한 사실임을 확인할 수 있는 수많은 사례 중 하나임이 분명하다. 이미 통행이 원활한 도로를 보행자들에게 더 양보하려고 자신들의 공간을 스스로 좁힌 조합원들의 농성장을 몇 번이고 몇 번이고 뜯어내야 이득을 볼 자가 세종호텔이 아니라면 누구란 말인가. 이번 사건에서 경찰과 구청로 대표되는 국가권력은 자본에게 이런 식으로 아첨한다.
법이라는 틀 안에 갇혀 사고하는 것이 마뜩잖지만, 분명 불법을 자행한 자들이 불법을 운운하며 폭력을 정당화한다. 이것이 자본이, 그 하수인에 불과한 국가가, 그 대리인인 경찰이 법을 또 하나의 무기로 삼아 시민을 억압하는 방식인 것이다.
다시 한번 분명히 말한다. 조합원들은 지난 행정대집행의 이유를 감안하고 그놈의 도로교통법을 존중하여 천막을 이전보다 작은 규모로 설치하였다. 용납할 수 없는 행정에 반대하여 구청에 민원을 제기하러 온 이들에게 미신고 집회니, 강제해산이니, 방패를 들고 설친 경찰에겐 욕마저 아깝다. 부디 고난했을 경찰준비생 시절을 떠올리며 항의방문과 집시법에 관한 법률과 판례를 다시 찾아보길 권한다.
명동에 외국인이 돌아왔다. 올해 2월 한국을 찾은 외국인 관광객은 작년 2월에 비해 379% 증가했으며 명동에 위치한 롯대백화점 외국인 매출은 작년보다 8.5배 늘었다. 점점 코로나 이전의 일상을 찾아가고 있다. 명동이 되살아나고 있다. 그런데 도대체 왜 명동 한복판의 호텔 해고노동자들은 그 일상을 되찾지 못하는가. 관할 구역 내 수많은 노동자들이 코로나를 핑계로 거리로 내쫓겼을 때 지방자치단체인 중구청은 도대체 무얼 했고, 어디있었나. 심지어 이제는 행정을 빙자한 폭력을 앞장서서 저지르고 있을 뿐이다.
그럼에도, 연이은 강제 철거 대집행에도 불구하고 부당하게 해고된 노동자들은 세종호텔 앞을 떠나지 않을 것이다. 떠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리고 오늘의 이 만행을 똑똑히 기억할 것이다. 폭력의 당사자들이 응당의 책임을 질 때까지 한치도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 역시 연대의 이름으로 세종호텔지부가 승리할 때까지 함께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