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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대선, 좌파의 선택은 정권 거부여야 한다―《전국학생 행진》의 파산에 부쳐

말랑키즘 2021. 11. 6. 18:05

20대 대선, 좌파의 선택은 정권 거부여야 한다

―《전국학생 행진의 파산에 부쳐

 

 

   2021115, 한국의 20대 대선을 124일 앞두고 학생운동에서 오랜 한 축을 담당하고 있던 전국학생 행진(이하 행진)은 좌파라면 그 누구도 이해할 수 없는 기묘한 입장문을 발표했다. 20대 대선, 좌파의 선택은 정권 교체여야 한다 : 국민의 힘 경선 후보 윤석열 당선에 부쳐라는 제목의 이 입장문은 공개되자마자 전방위적인 어그로를 끌었다. 그 내용이란 것이 결국은 민주당 재집권을 막기 위해서 윤석열 후보의 지지도 감수할 수 있다고 직접 적어 넣은 한 문장으로 요약된다는 점이 그 이유인데, 때문에 행진에서 활동했거나, 그들과 함께 운동을 해 온 모든 이들은 분노와 배신감, 모욕감으로 치를 떨며, 일각에서는 행진의 그간 행보를 언급하며 조롱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행진의 이 선택은 치명적인 오류이며 누가 보더라도 결코 옹호할 수 없을 정도로 잘못된 것임이 분명하다. 하지만 우리, 우리들의 상호부조’, 말랑키즘(이하 말랑키즘)은 이 초유의 사태에 있어 그저 조롱과 실망감으로만 접근하지 않으려 한다. 아무리 잘못된 생각이라 해도 그것을 표현할 수 있는 자유는 누구에게나 있어야 하며, 그에 대한 책임을 제대로 질 수 있다면 된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때문에 말랑키즘은 행진의 입장문이 왜 잘못되었는지를 올바르게 진단하고, 이를 극복하고 우리가 나아가야 할 길을 아나키스트 조직으로서 제안하고자 한다.

 

   우선 행진이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에 대해 평한 네 가지 논제, “민주당은 경제학적 문맹 내지 사기꾼이다”, “민주당은 법학적 문맹 내지 사기꾼이다”, “민주당은 군사위기를 부추기는 집단이다”, “민주당은 방역마저 실패한 무능한 집단이다라는 내용은 굳이 다룰 필요가 없을 것 같다. 말랑키즘이 비판하고자 하는 것은 행진의 이러한 진단 이후의 두 가지 귀결, “포퓰리스트 이재명보다 자유민주주의자 윤석열이 낫다”, “좌파의 선택은 정권교체여야 한다는 부분이지, 결코 여당이 작금의 한국 대중들의 생활 위기에 책임이 없다거나, 잘한 부분도 있다, 혹은 할 만큼 했다며 그래도 국민의 힘보다는 더불어민주당에 힘을 몰아줘야지따위의 이야기를 하고자 함이 아니기 때문이다.

 

   《행진이 어떤 근거로 포퓰리스트 이재명보다 자유민주주의자 윤석열이 낫다고 이야기하는지는, 이 문장을 제목으로 달고 있는 문단을 보아도 전혀 이해가 가지 않는다. 아무리 잘 봐주어도 국민의 힘윤석열 대선후보가 하는 이야기를 액면 그대로 받아들여 맹종하고 있는데, 그렇다면 이재명의 말을 못 믿어줄 이유는 무엇이란 말인가? 더구나 선거, 투표라는 제도는 기본적으로 한쪽 끝에 서 있던 사람들마저 표를 구걸하기 위해서라면 상대방의 이야기도 듣는 척하고, 그들의 말대로 행해줄 것처럼 혼신의 힘으로 연기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던가. 바로 그렇기 때문에 이재명 역시 최근 경북대학교에 가서 박정희 드립도 치고, 윤석열도 광주 가서 쇼를 하겠다고 계획도 세우고 하는 것 아닌가. 행진이 보기에는, 그러니까 이 행위들이, “어떤 정치이념을 가졌는지가 중요하다고 말하고서도 누구 한 사람을 긍정적으로 볼 이유가 된다는 말인가?

 

   나아가 선거, 투표는 언제나 포퓰리즘으로 환원되는 행위이다. 대중이 내게 이익이 되지 않는 사람에게 왜 권력을 위임해야 하며, 내게 이익을 주지 않는 사상을 왜 지지해야 한다는 말인가? 대중은 바보가 아니다. 대중은 스스로를 대중보다 똑똑하다고 믿으며 대중을 이끌어야 한다고 맹신하는 정치병자, 권력욕자를 언제나 분명히 직시하고, 아무리 시간이 오래 걸리더라도 반드시 그 욕망을 분쇄하고야 만다. 대중이 자신의 삶을 주도적으로 결정할 능력이 없어 보이는가? 대중이 무엇이 옳고 그른지를 모르니 대신 판단하고 결정해 주고 싶은가? 대중은 지금의 자신에게 가장 이득이 되는 결정들을 내리고 잠시 참아주는 것이지, 결코 뒤떨어진 객체가 아니다. 그런 오만과 독선으로 인해 좌파라는 이름이 조롱과 경멸의 대상으로 전락해 온 사실을 정녕 보지 못하는가?

 

   아, 정권을 교체해야 한다는 호소를 대중이 아니라 좌파에게 한 것이라고 말씀하시고 싶으신 것이라면, 그야말로 잘못된 판단이라고 단호하게 답변을 되돌려 드릴 수 있을 것이다. 좌파는 대중과 유리된 존재인가? 아니다. 좌파 역시 대중의 한 사람으로, 이재명이 이기든 윤석열이 이기든 에일리언 대 프레데터인 이 개막장의 상황을 어떻게 타개해야 하는지 걱정하는 누군가이다. 그렇다면, 누가 이겨도 꿈도 희망도 없는 이 상황을 그나마 조금 덜 ㅈ되는 길을 택하자는 이야기는, 좌파가 아니라 상식을 지닌 이라면 그 누구라도 블랙 코미디 이상도 이하도 아님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기억해 보자. 박근혜가 대통령직을 탄핵당하고 대통령이 부재했던 기간 동안, 사람들이 살아가는 데 어떤 불편이 있었는가? 황교안이 대리를 아주 잘 했기 때문에 문제가 없었는가? 그래서 황교안이 부정선거그 이야기는 너무 말 같지도 않은 이야기이니 하지 말자. 그러면 대통령이 없던 기간을 거쳐 문재인이 당선된 동안 문재인이 혜안과 불굴의 영도력으로 대한민국을 위대하게 만들었기 때문에 봉준호가 상을 받고 BTS가 월드 스타가 되고 오징어 게임이 공전의 히트를 쳤다는 말인가? 진심으로 그렇게 믿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과는 최대한 안전히 관계를 정리할 수 있으시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대통령은 우리 삶에 중요하지 않다. 아니, 중요하지 않아야 한다고 말하며 중요하지 않기 위해 일하는 대통령이라면 그나마 참아줄 수라도 있겠다. 하지만 윤석열도, 이재명도 그간의 행보로 미루어 대중을 어떻게 생각하고 어떻게 다루려고 하는지 너무나도 잘 알 수 있다. 이 미친 게임을, 지금 당장 멈춰야만 한다. 우리의 삶은 우리가 알아서 이끌어 나가겠다고 선언하고 내 인생에 겐세이 놓지 말라고 선언해야 한다. 내 인생의 주인은 나 자신이며 나는 자유롭게 다른 사람들과 협력과 교환을 통해 삶을 이어나가는 것이지, 대통령이, 정부가, 국가가 내 삶은 이래야 한다며 통제하려 드는 이 미친 굿판을 지금 당장 걷어치워야 한다. 좌파라면, 내 삶의 주인은 나이기를 원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정권을 거부하자고 나서야 한다. 너희 잔치는 너희끼리 지지고 볶든 어쩌든 알아서 하라고 하자. 우리는, 우리의 손으로 우리의 삶을 직접 책임지는 인간이도록 하자.

 

 

2021116

우리들의 상호부조’, 말랑키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