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지사항/성명 및 활동

1000일은 너무 길다―세종호텔 복직 투쟁 900일 연대 보고

알 수 없는 사용자 2024. 6. 6. 21:25

명동 거리에는 외국인들이 정말 많다. 명동에서 보는 입간판에는 영어는 물론이고 중국어, 일본어를 비롯해 온갖 종류의 언어로 글귀가 적혀있는 걸 볼 수 있다. 명동 거리를 걷다 보면 우리나라는 한민족 국가라는 환상을 주입받은 머리로는 여기가 정말 한국이, 서울이 맞는지 의심하게 되기도 한다.
그런 명동 한복판에서 호텔업이 얼마나 망할 수 있을까. 더군다나 세종호텔처럼 크나큰 호텔이 쉽게 경영에 어려움을 겪으리라는 것을 우리는 상상할 수 없다.
그러나 주명건은, 세종호텔의 자본은 코로나를 핑계로 대며 노동자들을 해고하고 거리로 내몰았다. 그들의 코로나로 인한 재정적 어려움이라는 핑계를 신뢰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그것이 설령 맞다고 가정하더라도, 그것이 900일동안이나, 그것도 자신들이 핑계로 댔던 코로나 시국이 끝난 뒤로도 해고노동자들을 복직시키지 않을 이유는 되지 않는다.
서울의 심장부를 지나며 우리는 노동자의 권리를 위해 외쳤다. 한국어로만 투쟁의 변을 외치는 것이 아니라, 말랑키즘 동지들의 힘을 빌려 영어, 일본어, 러시아어로도 우리의 뜻을 전파했다. 감히 말하건대, 말랑키즘은 이번 세종호텔 해고 900일 투쟁문화제에서 국경이라는 허황된 구분선을 넘어 국제적인 연대를 요청하는 데에 앞장섰다고 자랑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렇지만 동시에 여러 현실적인 문제들을 마주하는 계기가 되기도 하였다. 외국인을 비롯해 수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스마트폰을 들고 촬영하며 세종호텔 해고노동자들의 투쟁을 공유해주었지만, 그것이 과연 세종호텔의 자본가들에게 얼마나 타격을 줄 수 있을 것인가. 우리들의 복직시켜달라는 목소리를 과연 그들이 듣는 시늉이라도 할 것인가. 우리의 이런 목소리가 얼마나 해고노동자 동지들이 일터로 돌아가는 것으로 이어질 수 있을까.
하지만 동시에, 우리는 우리의 투쟁이 호소력을 지니고 많은 사람들의 이목을 끌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 역시도 확인했다. 노동자들을 위한 권리를 위한 외침은, 국가나 민족 따위의 장벽으로 막을 수 없는 진정으로 범인류적인 목소리로 이어질 수 있는 가능성을 보았다. 명동에서 우리가 외친 목소리가 메아리가 되어 돌아올 때까지, 우리는 계속해서 외치고 방법을 찾아낼 것이다. 언제나 그랬듯이.